불이 먼저 꺼진 창문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의 밤

by meldliy

아파트를 바라볼 때면 불이 켜진 집보다 불이 꺼진 집을 괜히 한 번 더 보게 된다. 이미 하루를 끝낸 사람들의 창문은 늘 궁금하다. 오늘 그들은 어떤 시간을 달렸고 어떤 이유로 조금 일찍 하루를 접었을까. 아직 끝을 기다리고 있는 나와 달리, 그들은 먼저 고요에 닿아 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날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유난히 차가 없던 도로였고 기사님은 망설임 없이 속도를 냈다. 평소였다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마음이 괜히 붕 떠버렸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낯선 도로처럼 내 마음도 낯설었고 떠오르기보다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주 침착하게, 스스로도 놀랄 만큼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마음이 너무 고요해지면 오히려 무섭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사고가 나서 모든 것이 끝난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이 지나치게 차분해서, 오히려 더 낯설었다.


그런 마음으로 멀리 보이는 커다란 아파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이미 불이 꺼진 창문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들어왔다. 나는 고요의 한 방을 세게 얻어맞고도 곧 다시 흘러가 버렸는데, 저 너머의 사람들은 이미 그 고요 속으로 완전히 잠적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들이 먼저 도착한 끝이 괜히 부러워졌다.


그들의 하루는 어떤 속도였을까.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기어가듯 흘러간 하루였을까, 아니면 지금의 이 택시처럼 뻥 뚫린 길을 달리다 문득 멈춰 선 하루였을까. 둘 다 아니라면, 고요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야심만 품은 채 결국 어둠 속에서 눈을 번쩍 뜨고 무언가를 괴로이 써 내려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도 가끔 그렇다. 글을 잘 쓰게 만들어주는 어둠이 좋다가도, 잠들어야 할 타이밍을 제멋대로 어기는 어둠이 몹시 싫어진다. 하루의 끝을 붙잡아 늘어지는 밤 앞에서, 나는 늘 조금 우왕좌왕한다.


그래서 그날은 불 꺼진 창문들을 향해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오늘의 어둠은 그들에게 달콤했을까. 초콜릿처럼 천천히 녹아들었을까. 아니면 침대 밑에서 끈질기게 손목을 잡아당기는 존재였을까.


택시는 결국 집 앞에 멈췄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문을 열고 내렸다. 고요는 나를 데려가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하루의 끝을 직접 맞이해야 했다. 불을 켜고, 신발을 벗고, 또 하나의 밤을 견디는 쪽을 선택했다.

불이 먼저 꺼진 창문들을 뒤로한 채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날 밤만큼은 이상하게도 나를 살게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불을 끄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먼저 끝내지 못한 밤은 실패한 하루가 아니다. 살아서 돌아온 쪽의 밤에는, 그 나름의 이유와 숨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