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말 없이 안아줘요

상처 앞에서 우리는

by meldliy

공감의 말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오직 상처 앞에서다. 이해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어쩌면 치유의 말이 될지도 모른다. 신중하게 말을 걸러야 할 때이지만 눈물이 나는 것만큼은 관대하게 허용해도 되는 때. 잊고 있던 상처를 다시금 꺼내는 일이 유일하게 통제되지 않는 때. 보통은 상처와 또 다른 상처가 만나면 더 큰 상처가 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건 어떠한 말이나 혹은 냉소로 이어져 만들어진 형태일 것이다. 통로가 없어 떼어져 있지만 눈물 한 방울로, 토닥거림 한 번으로 연결되는 마음의 손가락이 있다. 그건 너와 내가 영원한 이별을 말해도 저 멀리서 나름의 재회를 믿게 만드는 힘을 가졌을 테다. 말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유일한 때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 앞에서 겸허히 이해해 보려는 동정은 감히 불씨가 되고.


우리는 종종 이해를 바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해하기를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말을 할 때 누군가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는 걸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결국 “안아줄까?” 한마디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상처를 마주하면 쉽게 말을 찾는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아팠을지, 감히 짐작해 보려는 문장들. 하지만 상처의 크기는 타인의 언어로는 재단되지 않는 법이다. 어쩌면 그 말들은 다정함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때로는 상처 위에 올려놓은 또 다른 손일지도 모른다. 상처 앞에서는 잠시 무능해지는 편이 낫다.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정리하려 하지 않고,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지도 않는 것. 그저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의 속도를 따라 잠시 머무르는 일.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이 지나갈 때까지 ‘곁을 비워두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를 내보인다는 건 결국 마음의 가장 여린 곳을 건네는 일이다.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저 눈을 피하지 않고, 조급하게 말을 얹지 않고, 잠시 그 사람의 고요 속에 함께 서 있는 것. 사랑은 종종 말을 멈추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은 누군가를 기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조용히 받아낼 수 있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로도 곁에 있겠다는 마음이니까.


결국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훨씬 단순한 말로 남는다. 괜찮다는 말도, 이해한다는 말도 아닌.


그저,


안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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