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늘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by meldliy

아직은 밝은 저녁. 낯선 동네로 향하는 버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최대에 가까운 볼륨의 노래를 들으며 버스 안의 소음과 나를 완벽히 차단해 놓았겠다. 어쩐지 오늘은 다르고 싶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버스가 무심히 지나쳐가는 창문 밖 풍경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생각에 잠긴다. 기록한다.


하원 중인 아이와 엄마. 보라색 분홍색 반짝이는 가방은 어울리지 않게 엄마의 등에 매달려 있다. 아이들의 짐은 왜 죄다 엄마들이 들고 있는 거지. 홀가분했던 아이는 이젠 내 것이 아닌 홀가분함을 지켜보며 짓눌린다. 아득하게. 멈출 줄 모르는 눈물로. 노랑은 나무의 이마를 먼저 물들여. 노랑이 물든 나무의 키만큼 자란 기분. 버스 맨 뒷자리가 주는 유일한 특권. 신세계 백화점이다. 인스타에서만 봤던 곳인데. 또 엄마 생각. 양손 가득 엄마와 양손 텅 빈 딸이 손을 잡고 나오는 상상. 벤치 위에 남아있는 젊음. 15개의 창문 중 유난히도 밝게 빛나던 단 하나의 창문. 직진 밖에 모르던 어둑한 빛이 작은 창문에서, 벤치 위에서 다시 속력을 낸다.


낯선 동네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마주한 나의 꿈.

두려움 직면하기. 꾸역꾸역 꺼내놓은 용기가 준비되지 않은 싱그러움이 되는 꿈. 마음보다 먼저 말로 나오는 용기를 가질래요. 자연스러움에 깃든 용기를 가질래요.


꿈은 늘 동시야. 걷다가도, 자면서도, 멍을 때리다가도, 열중하다가도. 늘 어깨동무를 놓치지 않는 우정 같은 꿈.


그러니 표정 짓는 연습 따위 버려.

여행은 늘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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