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인 사람들
진심인 사람들이 좋다. 사랑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열중해야 할 것에도 진심으로 열중하며, 삶의 매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이 진심이라는 무대에 올랐을 때 펼치는 오두방정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내뱉는 모든 말은 음악이 된다. 짧게 뱉은 말은 하나의 트랙, 길게 내뱉은 말은 하나의 앨범이다. 말과 행동, 웃음, 걸음걸이, 그들의 전부가 음악이 된다. 감은 눈은 감은대로 심취해 있고, 찌푸려진 미간은 찌푸려진 대로 영감에 젖어있다. 공통된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가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오직 진심과, 대화와, 음악과, 사랑이 ‘다시‘ 피어나는 자리가 그들의 무대가 된다.
종종 그들은 너무나 진심이라는 이유로,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세계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곤 한다. 아픔과 시련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한때 견뎌냈거나, 혹은 여전히 견뎌내고 있는 중인 그들이기에, 그렇게 쫓겨나고 있는 중이기에 그들은 더 열심히, 더 진심으로 방랑자가 될 자격을 가진다. 가끔은 꽁꽁 숨겨두었던 서로의 아픔을 서로가 건드리기도 하지만, 그때는 아주 잠시동안 한 발자국 뒤에서 잠자코 서있어 주면 된다. 마치 커다란 나무가 또 다른 커다란 나무에게 잠시 기대어 있는 모습처럼.
그들의 공간은 전부 추억으로 물들어 있다. 촌스러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도 추억 때문이다. 낭만으로 일컬어지는 모든 이름들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혀둔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노래가 되어주고, 배우자가 되어주고, 단짝 친구가 되어주고, 때론 낯선이가 되어 멀찍이서 지켜봐 준다. 삶이라는 영화에 서로가 서로의 감독이 되어 한없이 지켜주고 총괄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끝을 맺어줄 줄도 안다. 언제나 사랑과 함께였던 이들이기에 손가락을 튕기며, 건반을 누르며,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마주한 사랑을 위해 노래한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과 마주 보고 누군가는 이미 떠나간 사랑을 마주 본다. 그리곤 이미 진심으로 가득 찬 그들은 또 한 번 진심에 진심을 더한다. 결국 다시 혼자 남겨져도, 떠나간 사랑을 붙잡지 않을 거란 진심을.
다리는 늘 서로의 쪽을 향해 꼬아져 있고, 눈빛으로 많은 얘기를 나눈다.
다시 시작하자.
삶도, 사랑도, 음악도.
너의 삶이 곧 나의 삶이고, 곧 나의 음악이니까.
말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자.
우리가 곧 음악이고, 우리가 곧 진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