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사는 사람이 그 안에서 환상도 좇는다면, 그는 그리움에 사는 걸까 환상에 사는 걸까. 뼈가 아리게 아픈 이 질문을 기어코 물음으로 끝마치고 싶지 않다. 물음표의 마지막 점을 최대한 느리게 찍는다 하더라도, 영원히 그 물음에 갇혀버릴까 봐. 나무가 안아주면 그 아래서 파랑을 삼키던 사람. 어둠이 작은 방에 요술을 부려 놓으면 그곳을 늘 등지던 사람. 그는 이 물음이 두렵다. 이때의 두려움은 영원이 찰나가 된 이곳에 갇혀서도, 꿈이 허상임을 알아챈 덧없음 때문도 아니다. 이미 오래전 먼저 갇혀있던 이들을 선뜻 들어주지 못하고, 웃어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밉기 때문일 테다.
너무 그리워하는 마음은 슬프다. 부재가 아닌 존재를 그리워하기에. 부재에 대한 그리움에는 환상이 따르지만, 존재에 대한 그리움에는 늘 희망이 따른다. 희망과 환상은 한 끗 차이. ‘닿을 수 없음’이란 공통, 그러나 닿을 수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희망.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위로는 조바심마저 잃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단 하나의 희망이 있다. 환상이 믿음을 품으면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코 끝에 바른 환상이 냄새를 잃는 순간에, 대뜸 희망이 우릴 구원해줄까.
결국 진심이 모든 걸 해결하는 수밖에. 진심은 뒤따르는 것들에게도 느지막이 들러붙는, 오래 걸리고, 끈질긴 녀석이다. 기쁨에도, 슬픔에도, 후회에도, 미움에도. 한 번 들러붙고 나면 그다음은 흡수다. 물기를 전부 머금어버린 수건처럼 흠뻑 젖고 만다. 다행인 것은 때 묻지 않은 물기를 흡수했다는 것. 순수하다는 것. 순수가 짙은 물이 순수한 진심에 녹았을 때, 마치 진한 원액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흠뻑 젖고, 느리게 마르고, 완전히 건조되는 과정. 목욕 직후의 몸을 다시 헹구어 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오래 걸리지만 개운한 노력. 깨끗함과 순수와 진심은 배가 되고 그렇게 다음을 기다리는 또 한 번의 진심은 단단하고 맑은 눈동자를 닮아있을 테다.
흐트러지는 머리도, 시리지 않은 바람도, 급하게 멈춰 서는 모든 것들도 용서가 되는 저녁. 진심과 함께 이 저녁에 녹아드는 기쁨.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도 웃음이 나는 건, 너무 바삭하게 튀겨진 것이 끝내 입천장을 갉아먹어도 아무렴 좋은 건. 왜인지 이유를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기분.
배낭을 화분 삼아 꽂혀있는 노란 꽃다발.
그는 어울리지 않게 오토바이를 타고 쌩쌩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