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평범

비로소 나의 선택이 되는 일

by meldliy

#1 나름의 평범

‘나름의 평범’이라는 제목은 샤워하다 문득 만들어진 제목이다.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았고 나름 그 평범을 즐기고 좋아하며 살았다. 간절한 꿈이 없어 일찍부터 남들 다 하는 공무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당연스레 생각하며 살았다. 그 생각마저 평범했고 가려는 길마저도 평범했다.


하지만 나의 평범은 갑작스럽게 아빠가 쓰러진 2022년의 어느 겨울, 그렇게 무너졌다.


#2 아빠

아빠는 가족밖에 모르던 천사였다. 엄마와의 연애시절엔 엄마에게 없는 것도 내어주던, 엄마 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오빠와 내가 태어난 후엔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주 6일을 일했다.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에 나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기에 그의 세상은 어쩌면 어둠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가족만큼은 유일한 빛이었을까.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반가워, 숨어서 놀래켜 주려 기쁨에 숨죽여 있는 오빠와 나를 향해, 그런 우리를 보며 미소 짓는 엄마를 향해,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우리를 향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매번 같은 웃음을 내보이며 손을 흔드는 그런 천사였다. 낚시와 캠핑, 자전거를 좋아하던 그에게 쉬는 날은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토록 귀했을 쉬는 날에도 일 때문에 충분히 놀아주지 못한 그 일주일이 미안해서 레고 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 오빠와 나의 옆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어쩌면 일할 때보다도 더 열심히 우리를 놀아주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였다.


그렇게 50이 되던 해에 아빠는 쓰러졌다. 쉴 틈 없이 베푸는 천사가 하늘은 가여워 보였을까. 그래서 기약 없이 쉬는 시간을 좀 가지라고 아빠의 어느 미래에서 시간을 앞당겨 가져온 걸까. 얼마나 가여웠으면. 아니, 아마 하늘은 그 착한 베풂 속에서도 본인을 챙기지 못했다는 죄악을 끝끝내 끄집어낸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3 같은 그림

우리 가족의 삶은 한순간에 달라졌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빠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기적적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한 걸음씩 발을 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는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묵묵히 재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날 이후 아빠의 시간은 분명히 달라졌고, 아빠를 돌봐야 했던 엄마 역시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같은 집, 같은 가족, 같은 저녁 풍경. 하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생겨 있었다. 예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를 바라보려 할수록 그 차이는 더 선명해졌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같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틀린 그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종종 이 달라짐을 애써 부정하려 했다.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의 웃음과 예전의 대화를 그대로 다시 붙여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억지로 붙여두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차라리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고 멀찍이서 바라보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럴 때면 그저 평범하길 바랐을 뿐인데, 왜 이런 평범조차 허락되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세상을 탓하다 보니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틀린 그림도 결국은 같은 그림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다르지 않은 가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대로인 척해도 어떤 변화는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그날 이후의 시간은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은 다를 거 없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을 조용히 아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4 신기루

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직업이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자마자 휴학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2025년 3월부터 공부를 시작해 6월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면접까지 끝낸 8월에는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많이 기뻤다. 엄마, 아빠는 나의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기뻐하셨다. 나보다도 더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더 많이, 더 오래 그 기쁜 마음을 즐길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석 달쯤 지났을까. 어딘가 공허했다. 수많은 축하를 받고 깊은 성취감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난 후의 나는, 그래서 무얼 얻었는가.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아빠가 아프지 않았더라도 사실 언젠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 그걸 아는 데도 불구하고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그 길의 스타트 지점에 돌연히, 덩그러니 혼자 놓여졌던 탓이었을까. 종료 지점을 넘어선 당장은,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가빠지는 숨 때문에라도 흥분을 하게 되고 그걸 우리 뇌는 기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호흡이 일정하게 돌아오고 나면 방금 전까지의 흥분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곤 현실이 보인다. 고개를 들고 나서야 보이는 종료 지점 너머의 세계를, 그제서야 직시하게 된다.


분명 아빠가 아픈 예외의 상황이 불현듯 찾아오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걸었어야 할 길이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공무원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내 안에 있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길을 걷겠다는 선택은 분명 내 의지였다. 위험하지 않은 길을 택하고 남들 다 하는 길을 나도 걷겠다는 결정 역시 내가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허무한 걸까. 평범했던 내 삶에 예외 하나가 끼어들었다고 해서 평범이라는 삶 전체가 뒤바뀌는 걸까.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 하나로, 내가 선택했던 모든 평범까지 함께 무너지는 걸까. 분명 내 의지로 택한 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쩐지 그 선택이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택한 일에는 정말 단 1퍼센트의 의지도 섞이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선택했다’는 말은 그 주체가 나이기에 가능한 말인데, ‘떠밀렸다’는 말은 애초에 선택하고자 했던 마음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계속 나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과연 선택한 걸까, 아니면 선택당한 걸까.


죽도록 하기 싫었지만 떠밀려 택한 일이 예상치 못하게 잘 풀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일은 떳떳하게 내 의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연이었을지도 모르고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는데,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작까지 내 것이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처음에는 기쁜 마음에 그 성취를 마구 쏟아냈다. 합격했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제대로 선택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이상하게도 남는 건 허무한 마음뿐이었다. 기쁨은 분명 있었는데, 그 기쁨을 붙잡고 있을 만한 무언가는 어디에도 없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이 허무가, 간절하지도 않은 것을 너무 쉽게 선택해버린 내게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간절한 것에 100의 노력을 쏟는 것과 간절하지 않은 것에 100의 노력을 쏟는 것은 정말 같은 걸까. 숫자는 같지만, 그 끝에서 마주하는 감정은 어딘가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노력이라도 간절하지 않았던 것에 닿은 성취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잠깐 반짝이다가 금세 흐려지는 것 같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새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속에 있다. 사실 아직도 나는 혼란스럽다. 이 길이 내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상황이 나를 여기까지 밀어온 건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 길이 내 선택이었든, 떠밀려 도착한 자리였든, 적어도 이 결과만큼은 우리 가족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나름의 평범을 위해 내가 버텨낸 시간의 결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 선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흘려냈던 마음만큼은 분명 내 것이었다는 것.


#5 남겨진 것

그래서 나는 이제 이 길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완전히 자랑할 수도 없는 상태로 조금씩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4개월의 공시 준비 기간을 떠올리면, 사실 나는 꽤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노력과 성과는 비례하다는 말, 후회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노력만 한다면 세상 그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을 나는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리고 이번 경험은 그 믿음을 다시 한번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같은 길을 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굳이 허무를 느낄 이유가 있을까 싶어진다. 돌이켜보면 찬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앞에서, 왜 나는 애써 허무를 찾으려 했을까 하는 어설픈 후회도 이제는 한다.


평범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날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 있고 여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문장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나름의 평범을, 내 생의 평범을 함께해준 소중한 이들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 예전과 같은 평범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나와 지금의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평범을, 그렇게 꿋꿋하게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