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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Nov 30. 2023

NBA 이야기

농구가 좋다

여고 때 학교에 농구팀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농구 명문이었다. 가드였던 선수가 LA 올림픽에선가  스타팅 멤버였다. 특히 김영희 선수의 출발이 우리 학교였음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시절의 추억 한 자락에는 경기 때면 몰려갔던 구덕체육관과 그 함성이 있다.


지금도 농구라는 구기 종목의 단체경기를 좋아한다. NBA 선수들이 보여주는 몸놀림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타고난 체격이 놀랍지만 그것만 갖고는 안된다. 공수전환이 순식간에 바뀌는 다섯 명의 선수가 그  양 날개를 다 달아야 하는 이 종목의 특성상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코비 브라리언트는 태어나지 않았다. 길러졌다.


구한말 얘기이다. 선교사들이 테니스 또는 정구를 치노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보면서 차일아래 의자에 앉아있던 고관대작들이 물었다 한다.  '그리 힘든 일은 낮은 것들에게 시키지 왜 그러냐'라고, 이는 정답이라면 정답이다.

왜냐고? 스포츠라는 것은 배부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시간이 남아돌고,  부른 배를 빨리 꺼지게 하니라고, 너무 배가 불러서 비만을 방지하니라고 시작했던, 유한계급들이 머리를 짜낸 것이 스포츠라 한다.


미국의 프로 스포츠 기중에도 농구판은 유색인 특히 흑인 선수들이 점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라는 유한계급의 전유물을 노예출신의 무한계급인 흑인들이 꽃피우고 있다. 예전에는 선수들만 그랬는데 이제는 그 경기 산업의 전체로 넓혀졌다. 그 판의 최고 부자 10위 내에 백인은 없다.


프로스포츠의 왕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야구팀에는 부자(아버지와 아들) 선수의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거는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야구라는 경기는 선행조건이 있다. 인가와는 분리된 교외의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용구와, 아들을 데려가고 데려와야 하는 부모가 있어야 한다. 구단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찍을 확률 또한 비교가 안된다. 그런 면에서 백인들의 비중이 농구보다 확실히 높다.


방송에서 예능 자가 붙은 프로그램을 혐오한다. 기중에서도 자식들을 데리고 나와서 깨춤을 추거나 눈도장을 찍는 걸 보면 뭔가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이다.

가수는 그래도 봐준다. 결국 실력이니까. 연기자들의 경우는 최악이다. 연기에는 뚜렷한 스코어가 없지 않은가.

가난한 부모의 가난한 딸이, 가난한 부모가 된 지금은 그렇게 저절로 물려받은 무엇으로 활개 치는 군상들에 속이 끓는다.

 

여러 선수들을 보지만 슈퍼스타들의 자식들이 활개 치지 못하는 경기가 아닌가 한다.

농구는 경기장에서 몸싸움과 개인의 역량과 장단점이 좁은 화면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다. 뒤뜰에서도, 앞마당에서도, 방안에서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돈이 가장 덜 드는 경기이다.


농구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티켓이었노라고, 그 길 외에는 없었다고,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선택받지 못했을 때를 기억하면서, 아내와 가족들,  아버지를 부르면서,  엄마를 생각하며, 형제들을 부르면서 울먹이며 서로가 눈물을 닦을 때면 나도 같이 눈물이 난다.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는 앨런 아이버슨의 명언이 있긴 하지만 신장 즉 기럭지와 순발력을 빼고는 말이 안 되는 종목이기도 하다. 키가 2M를 훌쩍 넘기고, 호리호리한 케빈 듀란트도 있지만 체중이 100킬로가 넘는 선수들의 일상의 불편함이란 말도 못 할 것이다.

그토록 큰 체격이 일상에서 쓰일 이라고는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두세 배를 소비해야 하는 형편이니 물자가 부족하다면 천덕꾸러기 십상인데, 소비를 미덕으로 삼은 미국에서 노예의 후손들로 해서 인기 만점의 스포츠 종목으로 열기가 갈수록 다해지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라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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