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습관의 힘(?)

시상자 되다

by 백설공주

일생동안 상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고(부끄러워라) 상을 받는 자리에서 마지못한 박수는 몇 번 했다. 내가 못 받는 상이란 거는 없는 것이 더 좋은 법 인지라 자동으로 시니컬했다. 상을 받는 면면들이 알만한 사람들이면 상의 기준이 궁금했다. 못 먹는 떡에 심보가 고울 수가 없어서 고춧가루 팍팍이었다. 내 마음이 이러해서, 세상에 이름 붙은 온갖 상들과 그 이면에 오갔을 계산들도 있으리라 하는 삐딱한 심뽀도 있었다.

막연한 궁금증과 호기심 또는 시기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지만, 이다음에 내가 시상자가 된다면...? 등의 생각을 하곤 했다. 평생에 상이라고 못 받아본 사람이 상을 줄만한 자리에 있을 턱이 있나. 그럴만한 일이라고는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치치내 한국 학교의 졸업식에 갈 일이 있었다.

치치내 한국 학교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한인회에 등록된 교민 단체들에게 학교 졸업식에 단체 이름이 붙은 상을 제공하게 되었다. 10년째 내가 회원으로 있는 '치치 문학회' 명의의 연중 유일의 외부 활동이다. 시작부터 몇 년은 학교에서 수상자를 지명하고 졸업식 가서 시상하는 것이 다였다. 어쩌다 보니 내가 시상자로 나갈 일이 많았음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로서는 자격은 도외시하고도 밀려서 가는 곳이고, 그토록 지루한 행사에 자리하고 있느라 몸살이 날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상'과 관련한 생각이 없지 않았음에도 습관을 따랐다. 해마다 돌아오는 '상'의 계절에 재작년에는 나에게는 해묵은 논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회원 한 분의 발의였던 '문학회의 취지에 맞는 상'이라는 숙제였다. 시상자인 우리 문학회가 학교 측에 시상 기준을 제시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인데 백 번 공감함에도, 문득 시상식에 단골로 나갔던 내 처지가 참 꾀죄죄하게 맘을 조였다. 나만 해도 모름지기 상이라는 오래된 제도에 생각이 꽤나 많았단 말이지.

날짜가 임박했기에 다음 해에는 우리도 기준을 만들자 하고 얘기는 되었다. 일 년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는데 또 연말이 왔고 '상'의 시즌과 함께 다시 의제에 올랐다. 이번에는 새 회원 한 분도 적극적인 의견을 보탰다. 느닷없이 시상 기준을 제시한다면 학교와 선생님들께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에다 시간이 촉박해서, 내년에는 즉 올해부터는 분명히 해보자 하고 결론이 났다.

연말이면 선약들이 많고 여행과 직장 등으로 번번이 시상자는 내 차지가 되었다. 시간 맞춰 도착하고 보니, 협찬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더 많이 늘었기에 놀라웠다. 기중 눈길을 끈 단체가 로컬 아트 클럽이었다. 교민 한 분이 회원이라서 다리를 놨다고 하는데 대표로 연세 지긋한 키위 할머니가 시상자로 오셨다. 못해도 150명은 넘었을 한국인들 사이에 유일한 키위였는데 그 단체에서 제시한 시상 기준이 심박했다. 수상자로 부모 중 아빠가 한국인이면서 엄마가 한국인이 아닌 가정의 학생이었다.

양친이 한국인인 학생들이 많지만 부모 중 한 분이 한국인인 경우가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기중 엄마가 우리말을 쓰지 않는 경우의 2세들이 우리말을 익히기는 몇 배로 어려울 것은 분명하다. 역시 오랜 다문화 역사가 경험이 녹아 있는 혜안이라 싶었다.
2 년 동안의 탁상공론했던 난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학교 졸업식 지겹기는 매일반이지만 작년에는 학교 측에서도 애를 쓴 흔적도 있었고 적절한 가이드와 지침을 발견한 듯했다. 이 년째 이어졌던 논의도 모습을 잡았고, 반면교사로 삼아 마땅한 예가 있었으니 올해부터는 의미 있는 상이 주어질 수도 있겠다.

나로서는 삐딱한 마음에서 시작했던 상과 시상, 수상에 대해 오랜 타성 하나를 극복한 마음조차도 든다.

2021,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