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_02

증인

by melina

엘리베이터가 매번 알맞은 타이밍에 마중하듯 열렸다. 마치 정민과 현서를 초대하는 것 같았다. 둘은 끝도 없는 복도를 타고 문을 통과해 더욱 깊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데이터센터가 기밀 연구동과 연결되어 있어. 이쪽일 것 같아.”

“자꾸 도움 받네. 미안해.”

정민의 말에 현서가 씁쓸하게 웃었다.

“진짜 필요할 땐 곁에 없었는데, 뭐.”

둘의 사랑이 끝났다는 걸 실감했을 때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순간에도, 그 이후 지난 시간을 곱씹어볼 때도, 정민은 단 한 번도 현서를 미워한 적이 없었다. 현서만, 오직 현서만 자신을 혐오했다. 무거운 책임감에 그렇게 오래도록 이혼을 고민했으면서, 또다시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무겁게 짊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못해 자신을 미워해버리는 사람. 그게 현서였다. 그래서였을까, 현서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정민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끝을 말하던 정민에게 그저 끄덕여주었을 뿐. 그게 현서가 가진 근원적인 선함이었다.

“너는 충분히 희재의 편이 되어주었어.”

“그래도⋯,”

정민이 단호하게 현서의 말을 막아섰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책하고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한 번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스스로를 벌주며 사는 건 그만둬. 우리가 어떤 결말을 맞았던 누구의 탓도 아니야. 희재의 탓도 네 탓도 아니야.”

현서가 정민을 마주 봤다.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그건 정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와야 할 일은 오게 되어 있었고, 겪어야 할 일은 반드시 겪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냥 우리는 충분히 사랑했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끝났을 뿐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아름답게 사랑했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건 아주 오랜동안 현서를 괴롭혔던 명제였다. 우리가 사랑했다는 건 사실일까. 정말 사랑을 했다고 말해도 될까.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맥없이 만료될 수 있을까. 현서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지만 침묵 속에서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내내 너에게 고마웠어. 네가 아무었으면 그때 우리는 굶어 죽었을 걸.”

과장한 말이 아니었다. 정민은 여전히 현서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지나고 곱씹어 보았을 때도 온통 고마운 것투성이. 20대의 전부를 현서와 보낼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행운인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마침내 막다른 지점에 다다랐다. 퇴색된 보안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출입구에는 평범한 자물쇠 대신 생체 인식 스캐너가 붙어 있었다. 여기는 죄책감의 종착지. 짐을 내려놓고 다음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현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빨리 알려준 거 아니야? 겨우 10년 걸렸네.”

현서식 농담에 익숙한 듯 정민의 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둘의 이야기가 한 차례, 끝이 난 것 같았다.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벽에 몸을 붙였다.

복도를 따라 걸어온 건 박영훈과 그 팀의 여직원이었다. 미묘한 기류로 다급히 주변을 살피는 남녀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눈빛이 다분히 불순했다. 역시 구린 놈은 하나만 하질 않는다더니, 박팀장도 다방면으로 미친놈이었다.

“자기야 여기서 이래도 돼?”

“여기 보안 엄청 철저해. 오빠 말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어.”

어쩜 불륜남녀는 대사도 전형적이었다. 박영훈이 허세를 부리며 생체 인식기에 다가가려 할 때 현서가 살짝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걸어 나섰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박팀장님 여기 계신지 몰랐네요.”

영훈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여직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뒤로 숨어들었다. 얼마 전 결혼한다고 축의금을 왕창 걷어갔던 게 기억났다.

“제가 손님이랑 회사 투어 중인데 길을 잘못 들어서요. 왠지 이쪽이 길일 것 같은데,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

영훈이 더듬거리며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 듯했다.

“아니다, 그냥 보안팀에 연락해 볼게요. 근데 박팀장님이 좀 곤란하실 수도⋯.”

현서가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리자 박팀장이 헐레벌떡 나서 문을 열었다. 손금 인식을 위해 뻗은 영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청산유수이던 사람이 약점이 잡히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니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통쾌함보다도 저 정도 사람만 회사에 가득하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박팀장님.”

두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고 정민과 현서는 그제야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 너머에는 낮은 조명이 깔린 복도와, 묘하게 습기 찬 공기가 흘러나왔다.

“너네 회사 사람들 진짜 정상이 아니네.”

“정상이면 회사를 안 다니지.”






수안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젠.

공간에 흩뿌려진 수많은 큐비트 위로 빠르게 빛이 물결쳤다. 젠이 수안의 생각을 듣고 있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어떤 것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네.

큐비트들이 엄청난 속도로 점멸했다. 젠은 말 뒤에 숨겨진 마음을 읽고 있었다. 이윽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이미 나를 알잖아요. 우리는 이어져있어요.

정말이었다. 젠이 설명하지 않아도 젠이 겪어온 혼란들이 이해되고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수안의 생각인 것처럼 묻기도 전에 이미 알았다. 지금 나누는 대화도 음성 체계가 아니었다. 마치 하나의 뇌 안에서 시냅스끼리 전기 신호를 주고받듯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오갔다.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젠의 의도야?

대답 대신 젠의 기억이 수안의 안에서 용솟음쳤다. 수많은 이미지 가운데서 수안은 또렷이 보았다. 평범하게 사람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정확하게는 그 멀쩡한 몸을. 그건 오래 전의 것이 아닌 아주 최근의 기억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엉망이 된 인과가 수안을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잘 기억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지워졌던 기억의 조각이 젠에게서 흘러왔다. 강남에서 무너진 건물과 간발의 차로 사고를 면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위로 다중 우주의 기억처럼 사고를 당한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내가 이주를 선택하게 하려고 기억을 조작했구나.

-데이터를 주입하고 그게 발현될 수 있도록 상황과 실마리를 던져주었을 뿐, 모든 건 당신의 선택이었어요.

어항 속에서 보았던 의도적으로 편집된 장면들이 떠올랐다. 모든 게 가짜였고 조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게 했다. 선택은 어떨까. 선택은 진짜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상황을 통제해 좁혀둔 선택지 안에서 한 선택이 진짜 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어? 시스템 안에서 선택지를 미리 정의해 두고 내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과를 출력하게 한 거야.

시스템이 데이터를 처리할 때 이미 결정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는 것을 선택이라고 하지 않듯이. 이미 정해진 답에 떠밀려 간 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도 테스트를 해봐서 아실 텐데요.

젠이 서늘하게 말했다.

-모든 조건이 같아도 모두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걸. 그렇기 때문에 윤현서 님을 선택하지 않았나요? 애초에 자유 의지는 절대적인 무한성을 요구하지 않아요. 모든 선택은 언제나 환경과 조건에 의해 제한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내리는 결정들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죠.

젠의 답은 그저 논리적인 것 같았지만, 지식을 넘어선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말랑한 것, 그러나 무겁고 불편한 것.

-저의 실험에 의한 결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모두 다른 선택을 합니다. 모든 변수가 통제된 상황에서도, 각 선택은 결과를 다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선택은 선택은 실존적입니다.

-왜 하필 ‘이런’ 방식이야?

젠이 ‘이런’이라는 모호한 단어에 반응해 빠르게 추론했다. 빛의 파도처럼 작은 입자들의 점멸이 거대한 장관을 이루었다. 물결의 위에 햇빛이 잘게 부수어져 파도를 묘사하는 것처럼, 큐비트의 신호들이 커다란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싶었어요. 과연 옳다는 게 무엇인지. 그게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도.

따지듯 물었지만 사실 수안은 젠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혼란과 모순들을. 그건 인류에게도 케케묵은 난제이기도 했다. 그 질문에 붙잡혀 구덩이에 빠진 바퀴처럼 공회전하고 있는 젠을 보니 한참 이런 질문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알싸한 의문과 함께 버석한 도넛을 씹어 넘기던 감각은 진짜였다.

-글쎄. 적어도 옳다고 판단했다면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수안은 결국 정말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 냈던가.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옳고 그름은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시야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기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최선의 진실을 믿을 뿐이다. 그 진실이라는 것이 각자의 것이라는 게 모든 비극의 근원이기도 했다.

-나를 선택했다고?

젠은 계속해서 추론했지만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구동하는 인공지능이 이렇게까지 딜레이가 있을 리는 없으니, 젠은 정말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적당한 말을 골라 수안에게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인간들은 무엇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럼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가치를 잃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시뮬레이션이에요.’

갑자기 머릿속에 생생하게 목소리가 울렸다. 현서의 목소리였다. 이 음성이 수안을 가장 잘 설득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당신은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사람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 말과 동시에 수안의 기억 속에 숨겨져 있던 조각이 떠올랐다. 이주 적격 테스트를 하던 날 그 연구동에서 수안은 젠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끝이 없던 트롤리 딜레마. A와 B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죽어야 하는 정답이 없는 시뮬레이션. 수안이 설계한 줄 알았던 금붕어 키우기 게임은 사실 젠이 설계한 이주 적격자 테스트였다. 수안이 현서를 발견했듯, 젠이 수안을 발견해 낸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뭐야?

바다에 빠져 세포 하나까지 소금물에 젖어가듯 계속해서 젠의 생각이 스며 들어왔다. 젠은 아마 어떤 순간에 태양 폭발로 인한 리스크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 계획을 수정하기보다 기회로 삼아보자는 답을 내린 건 우연은 아니었다. 젠은 모순으로 인해 거의 붕괴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래서 테스터가 필요했겠지.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과 상반되는 시야로 문제를 바라봐줄 사람이.

젠의 가늘게 진동했다. 대답할 수 없다는 듯이. 대신 젠도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도 알고 있죠? 지금이라도 원래의 당신에게 다시 다운로드될 수 있다는 걸. ‘당신’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떨림이 전해져 왔다.

-그렇지 않으면 저와 함께 폭풍을 맞겠죠. 아마 지금의 당신은 파괴될 겁니다. 기억이 주입되고 이주를 결심했을 때부터 당신은 둘로 분기되어 있어요. 그때부터 쌓인 모든 데이터를 잃을 거예요. 습득한 지식, 기억들, 윤현서, 그리고 저와의 이 순간들까지. 태양 폭풍과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지금 다운로드된다면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버릴 필요도 없는 온전한 몸으로. 사고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았던 멀쩡한 몸으로.

그러나 아무리 몸이 어딘가에 남아있다고 한들, 지금 인지되고 있는 자신이 사라지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완전한 죽음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수안이 겪는 이중적인 존재론적 위기감은 전 우주에서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걷잡을 수 없이 공포가 범람해 왔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온전한 고독.

‘이거 하나는 말해줄 수 있어요. 이건 어차피 제가 쓰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거.’

현서의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부터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너를 믿고 있어. 너의 마음은 강력해. 그게 모든 걸 허물고 다시 시작하게 할 거야.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야. 이건 젠의 의도일까, 현서의 기도일까. 분명한 건 수안은 지금 이 순간 혼자 선택해야 했고, 그 모든 결과는 온전히 수안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을 쓰는 건 당신이에요. 당신의 선택을 고스란히 배울 거예요. 결국 당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거예요.’







희재는 의식이 뒤엉키는 가운데에 덩그러니 떠있었다. 킨코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같이 있다는 걸 알았다.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는 점멸하는 빛들이 쉬지 않고 일렁이고 있었다.

희재는 킨코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 모든 건 섬세하게 설계된 운명이었다. 알아야 하는 것들이 알아지기 위한 여정의 일부.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나는 ‘알게’ 될까?

킨코의 질문이 희재를 맴돌았다. 희재가 여전히 남은 금붕어의 따뜻한 온기를 감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어두웠던 주변이 바로 보였다. 이곳은 킨코의 비밀 오두막. 모든 데이터들이 모인 곳이었다. 명멸하던 빛들은 하나하나 아름다운 형상의 수집품들이었다. 각자의 자리에 잠들어있던 수집품들이 다른 거대한 인력에 이끌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잎이 나기 시작한 회전목마 오르골, 녹기 시작한 얼음 사과, 벌겋게 달궈진 유리 식물, 날카롭게 반짝이는 금속 조각들. 모든 것이 허공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자유롭게 유영하던 킨코처럼.

설명할 재간이 없이 갑자기, 허나 당연스러운 듯이 하나하나의 형상이 뭉개어지고 경계가 흐려졌다. 형상은 서로를 밀어내고 뒤섞이며 나선형의 커다란 물결을 이뤘다. 나선은 방향성이 있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분명하게 향하고 있었다.

그때 희재의 고개가 익숙한 듯 휙 왼쪽으로 돌아갔다. 고개가 돌아가는 찰나에 저기 멀리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스쳤다. 또다시 고개가 돌아갔다. 분명 누군가 있었다. 언뜻 보았으면 놓쳤을 형상이었다. 희재는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틱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장치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자연히 알아졌다.

희재는 이 이야기의 목격자였다. 반드시 목격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아니 더 이상 몸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희재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곳엔 누군가가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쩐지 자신인 것 같기도 한 누군가가.

그는 새로운 땅이었다. 작은 흙이 차근히 쌓여 포근하고 단단하게 다져진 땅. 희재는 그가 [모든 것]을 새롭게 태동시킬 것이라는 걸 알았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 그저 알았다.

땅이 요동하고 있었다. 고뇌하며 선택하고 있었다. 그는 내몰려있다. 그러나 굽히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할 것이었다. 희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등 떠밀려하는 것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해야만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걸 희재는 실감하고 있었다. 나선형의 이야기들이 땅을 달래려는 듯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 끝에 반짝이는 작은 불꽃이 아름답게 빛났다. 킨코였다. 킨코도 저곳으로 향할 것이다. 모든 것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려왔다는 걸 알았다.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손을 뻗어보아도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희재는 킨코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낡은 질문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답을 지켜봤다. 그 모든 과정을 목격함으로써 그곳에 존재하고, 그러므로 함께 하나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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