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모든
“뉴스 ^!&$입니다. 오늘 아침 !%^한 )*!@# 인해 ⋯”
하늘이 온통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울의 고층 빌딩 위로, 강을 따라 흐르는 다리 위로, 그리고 끝없는 어둠을 품은 산맥 너머까지 모든 공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도시 위에 불덩이가 떨어져 화마가 번지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불길이 아니었다.
오로라.
온 하늘을 뒤덮은 붉은빛은 오로라였다.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장막이 드리워졌다. 거대한 금붕어의 꼬리가 물결치듯, 광대한 빛의 조각들이 천천히 나부꼈다. 붉은색이 거친 붓자국처럼 퍼지고, 그 사이사이 푸르스름한 섬광이 감도는 것이 마치 심연에서 솟구치는 불꽃같았다. 지금까지 어렴풋하게 보였던 오로라와는 확연히 다른 선명함이었다. 정민과 희재는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의 장막을 보며 모두가 마치 주문에 걸린 듯이 숨을 삼키고 말을 잃었다. 통신은 다 먹통이었고, 전산 시스템도, 신호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멈춰 선 자동차들과 신호 이상으로 도로는 꽉 막혀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가게마다 결제가 되지 않아 난감한 얼굴이 된 이들이 줄을 지었다. 길거리는 처음 보는 장관을 눈에,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저마다 최선의 방식으로 처음인 기적 같은 광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환호하며, 화를 내며, 두려워하며 누구 하나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뻗었고, 연인들은 손을 맞잡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했다. 지나가던 노인은 마치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성 데이터센터가 태양 폭발에 처참히 파괴되며 로어와 베레시트의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중단되었다. 당장의 전산 시스템 마비로 주가가 폭락하지 않은 건 꽤 우스운 지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신한 위성 화면에 의하면 로어의 위성들은 폭발의 순간 마치 방패처럼 지구를 감싸는 모양으로 줄을 지어있었다고 했다. 꼭 무언가를 지키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 이유를 궁금하다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 와중에 정민은 요란하게 울리는 알림 탓에 정신이 없었다. 정작 메시지는 수신되지 않고 알림만 울려댔기 때문에 단순한 혼선으로 치부해 버리고 모두 꺼버렸다. 정민의 연구에 참여했던 BDA 환자들이 일순 모든 게 괜찮아졌다며 정민에게 몇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해지지 않았다. BDA 증후군을 앓았지만 마인드 업로딩 기계에 누워있다가 문득 몸 안으로 치료제가 들어오는 걸 느꼈다며 커뮤니티에 간증글을 올린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역대 최고의 태양 폭발과 처참히 파괴된 인공위성 군단, 그리고 처음 보는 오로라의 숨 막힌 자태에 모두 묻히고 말았다.
희재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영혼과 몸이 섬세하게 동기화된 감각을 느꼈다. 언제 빼앗긴 적이 있었냐는 듯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희재는 나란히 걷고 있는 정민을 바라봤다. 어릴 적 손을 잡고 나가면 모녀로 오해받는 상황이 잦았다. 그때마다 정민은 엄마가 아닌 이모라고 단호하게 정정하곤 했다. 그럼 둘의 얼굴을 유심히 번갈아보던 사람들은 어쩐지 모녀가 별로 안 닮았다 싶었다며 그제야 의문이 풀린 사람처럼 굴었다. 그만큼 정민은 희재와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꼭 그만큼 정민은 희재에게 거리를 뒀다. 최선을 다해 안아주지만 엄마가 되어주지는 않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이 희재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정민은 끝까지 모를 것이다. 이제 희재도 그에 대해 잊을 테니까.
“이모 오늘은 출근 안 해도 돼?”
나란히 걷던 희재가 물었다. 정민이 웃으며 대꾸했다.
“어차피 시스템이 다 마비되어서 게이트도 안 열릴걸.”
희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걸었다. 무의식이 뒤엉키던 그곳에서 보았던 것들을 곱씹고 있었다. 바로 어제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오래된 과거의 기억 같았다. 하나를 꺼낼 때마다 기억보다 커다란 감정들이 같이 밀려들었다.
“현서 이모에게 가자.”
희재가 먼저 현서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기서 내가 본 걸 이야기해줘야 해.”
정민이 희재를 꽉 끌어안았다. 이 품이 희재에게 온전한 안락을 줄 수 있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현서네는 아주 멀어. 괜찮겠어?”
머나먼 산책을 위해 든든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희재는 희미하게 웃었다. 정민이 내내 기다려온 것이었다.
SNS, TV, 라디오 할 것 없이 모든 채널에서 뉴스 속보가 나왔지만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현서는 뉴스 조각들을 짜 맞춰보며 거리로 나섰다. 오로라 자락이 온 세상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길게 늘어져 아롱아롱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불안과 감탄이 뒤엉켜 묘하게 고조되어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직 현서만이 알고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안의 고민과 결정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도. 수안이 젠을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모든 게 수안의 선택이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현서가 바라보고 있는 끝은 수안의 최선일 것이라고.
현서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하염없이 걸었다. 이렇게 정처 없는 산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슬퍼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몇 달 사이 상상해 본 적도 없던 일들이 현서의 삶에 벌어졌지만, 사실 그다지 모를 일도 아니었다. 현서는 그대로 현서였다. 돌고 돌아 온전히 현서가 되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수안이 마지막까지, 비로소 수안이었던 것처럼.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던 현서를 끌어냈다.
“이모부.”
현서를 이모부라고 부를 유일한 사람, 희재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고 물으려다가, 모든 디지털 시스템이 먹통이 된 지금, 현대인이 할 수 있는 건 기나긴 산책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쭈뼛거리며 어색해하는 희재를 보니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세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신없이 들쳐업고 나오느라 보지 못했던 얼굴이 이제야 제대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안았을 때, 어린 손으로 옷자락을 붙잡으며 현서를 올려다보던 희재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어요.”
희재는 무의식 속에서 보았던 두 개의 찬란한 중심을, 그들의 온전한 합치를 떠올렸다.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현서는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 있었고,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희재뿐이었다.
“그 언니를 봤어요.”
현서의 눈이 커졌다. 수안이다. 희재는 그곳에서 수안을 만난 것이었다. 희재는 현서를 가만히 마주 보며 한 글자 씩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 언니는 그곳에서 [모든 것]이 되었어요.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서.”
현서는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수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고 말하는 수안의 얼굴은 어린아이의 것처럼 무구했다. 단호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작은 어깨가 조금 떨리는 걸 현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설명을 바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수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두려워도 해야 하는 일. 등 떠밀린 사람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수안은 해낸 것이다.
오로라는 여전히 한없이 찬란하게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수안은 자신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여전히, 마지막까지 그저 할 일을 행했을 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