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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 Mar 16. 2023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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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처럼 20대 초반 고민이 많았다. 지겨운 학교생활과 반복되는 일상은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 바꿔나가야 하는 것들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열정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벚꽃이 피는 계절 산이 많은 추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가위를 잡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이 밖에 나가고 싶었다. 200명을 채우면 3일의 휴가가 나에게 더 주어졌기 때문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의 삶은 하루가 꼭 한달인 것 만 같았다. 나에게 24시간은 720시간이었다. 720시간을 빨리 태우고 싶었다. 그래서 가위를 더 많이 잡았다. 그렇게 나의 24시간이 24시간에 가까워질 때쯤 깨달았다. 머리를 자른 후 거울 속 본인의 모습을 보고 만족해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 모습을 좀 더 오래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만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1개월의 군생활이 끝나고 나의 하루도 남들과 똑같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의 모습은 생각보다 너무 평범했다. 강의실에 앉아 진로가 아닌 점심메뉴를 고민하고 수업이 끝나면 용돈을 벌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아르바이트를 갔다. 2년 전 나의 모습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나의 삶 속에 어떠한 열정이나 활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그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그때 나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냥 웃겨서 웃는 그런 웃음과는 확연히 달랐다.


 결국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용기를 내어 다시 가위를 잡았다. 평범한 나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위를 잡는 일을 나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때 '바버'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어로는 '이발사'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남의 머리털을 깎아 다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미용사와 차별되는 점으로는 합법적으로 면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미용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당연히 자격증도 미용사자격증, 이용사자격증이 구분되어 있다.) 아무 지식도 없던 나는 '이발사는 남자머리를 자르는 사람,  미용사는 여자머리를 자르는 사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였다. (물론 이 일을 업으로 하는 지금은 단순히 남자머리, 여자머리 그리고 짧은 머리, 긴 머리가 아닌 각자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머리를 하는 이. 미용사로 구분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2년 동안 남자머리를 잘랐으니 당연히 이발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무엇보다 자신 있었다. 나는 남자니까 남자들의 머리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자격'을 가지고 머리털을 깎고 다듬는다. 그 자격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헤어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공감해 주는 거 이상의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다. 전혀 관계없는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연결고리이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것은 즐겁다.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발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고 재밌는 일은 나누면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 나에게 머리를 맡기시는 모든 분들이 이미 잘려나간 머리카락처럼 마음의 짐은 다 잘라내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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