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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 Oct 02. 2023

고민을 잡아먹는 녀석

 유명해지고 싶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냥 조용히 살다가 죽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정답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이전까지 인스타그램은 그저 내가 공개하고 싶은 일상을 올리는 정도의 기능만 했다. 사실 이마저도 잘 활용하지 않았다. SNS는 ‘생활하는 데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내가 인스타그램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옷 입는 것을 좋아해 처음에는 OOTD를 촬영해 매일 사진을 올렸다. 글 쓰는 것도 조금 좋아하는 것 같아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사진에 맞는 글을 써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계정에 찾아가 팔로우하고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피드가 너무 매력적이세요! 자주 소통하면서 지내고 싶은데 맞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하면 대부분은 맞팔을 해주고 이는 초반 팔로워를 늘리는 것에 용이하다고 해 열심히 했다.)     


 그렇게 수백 번을 반복한 끝에 OOTD를 올리는 계정에 1000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나를 아는 사람이 1,000명이나 생기다니...!!) 하지만 열정도 잠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금방 지쳤고 한 달에 게시물 하나 겨우 올릴까 말까 했다. 엄청난 노력 끝에1000명의 팔로워를 얻었지만 ‘유령계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약 4년 전의 일이다. 이후에도 코디가 마음에 드는 날이면 종종 사진을 찍어 올리긴 했지만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1400명의 팔로워가 있다. (이마저도 떨어지는 중이다.)

 그사이 본업이 생겼고 이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을 한다. 이 또한 유명해지기 위해 고객님들의 머리가 멋있을 때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 결과 1110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덕분에 많은 고객님이 나를 찾아주시지만, 유명해졌다고 하기에는 알아주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글 쓰는 계정은 잊힌 지 오래.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작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쳐다보는 일이 버거웠다. 특히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두세 번 아니 네다섯 번...? 정도의 협찬도 들어왔지만 피로한 눈, 아픈 손가락과 맞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하... 인스타그램 그만하고 싶다... 진짜로!’

‘내가 정녕 유명해질 방법은 인스타그램밖에 없나.’

     

 하지만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인스타그램.

그렇게 ‘뭐 하지?’는 ‘언제 하지?’라는 고민으로 바뀌었고 ‘나는 앞으로도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해야만 한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생각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쉬엄쉬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처럼 잠깐하고 말게 아니라 좀 더 길게 보고 여유롭게.

    

‘오늘 코디 좀 괜찮은데? 언제 올릴지 모르겠지만 우선 찍어놔야겠다.’

찰칵찰칵

‘오... 고객님, 오늘 머리 너무 멋있는데요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찰칵찰칵     


찰칵찰칵 찰칵찰칵      


‘아 참, 글 쓰는 것도 포기할 수 없지. 생각나는 건 바로바로 메모장에 남겨놔야겠다!’     


 조금씩 쌓인 고민은 핸드폰 용량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핸드폰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먹혔을 테니까. 그것이 나의 고민을 잠시나마 붙잡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고민을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128GB만큼의 용량밖에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26GB 정도 찼을 때 나의 고민을 다시 꺼내 봐야겠다. 용량을 조금씩 줄이다 보면 나의 고민도 조금씩 줄어들 테니까. 그러다 절반 정도 줄어들었을 때면 조금은 더 유명해져 있지 않을까? 빨리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에 괜히 사진첩을 한 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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