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날이면 엄마의 도시락을 먹는다. 28살이나 먹어서 아직도 엄마에게 도시락이나 싸달라고 한다니.... 미친 거 아니야 싶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태니, 조금 부끄러울 수는 있어도 욕먹을 일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아들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주 바쁜 요즘에는 사 먹기 귀찮다는 이유로. 또 나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 엄마는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주신다. “본인이 직접 싸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요리를 못 한다. 방금 느낀 건데 ‘어쩌면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거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즐겁지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는 건 다른 얘기일 테니까. 채소를 썰고 볶고, 국에 양념을 하고 끓이고. 먹고 또 치우고. 이 모든 과정이 귀찮고 귀찮고 귀찮다.
그리고 나는 나름의 아침 루틴이 있다. 결코 늦잠을 자는 것이 아니다. 우선 아침 수영이 없는 날이면 오전 8시쯤 일어난다. 핸드폰을 좀 만지작거리다 10분 정도 책을 읽는다. 딱히 기억에 남지도, 잘 읽히지 않아도 그냥 읽는다. 밖에서는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8시 30분쯤 거실로 나간다. 폼롤러로 무거운 몸을 풀어준다. 만성 허리통증과 장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하루를 시작하려면 짧더라도 꼭 해줘야 한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아침을 먹는다. 그 사이 엄마는 나의 도시락을 챙겨놓고 출근을 준비하신다. 이렇듯 내 몸 하나도 챙기기 빠듯하다. 아마 엄마의 도시락이 없었다면 나의 점심의 8할은 편의점 도시락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도시락을 들고 출근한다.
정신없는 낮을 보내고 두세 시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반찬통에는 깻잎장아찌, 멸치볶음, 김치가. 큰 보온 통에는 따뜻한 고깃국이 들어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숟가락을 떴다. 맛있다. ‘내가 하면 이런 맛이 날 수가 없잖아. 그건 재료 낭비야.’라는 자위적인 생각과 함께 밥을 한 숟가락 먹고 국물은 건더기까지 듬뿍 떴다. 아니 근데 웬걸. 기다란 팽이버섯들이 뭉텅이로 올라왔다. 잘라먹을까 고민하다 잘 안 잘려 한입에 다 넣었다.
‘질겅질겅’
아무리 씹어도 잘리지 않는다. 촘촘한 이 틈 사이로 얇디얇은 팽이버섯들이 끼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씹었지만, 오히려 이에 더 낄 뿐 팽이버섯은 잘리지 않았다. ‘거 먹기 되게 불편하네. 팽이버섯은 이제 넣지 말아 달라해야지.’ 얻어먹는 주제에 불만은 참 많다. 그래도 맛있는 반찬들과 고깃국 덕분에 힘을 내서 오후까지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국 너무 맛있더라. 고기 어디서 났어? 근데 나 팽이버섯은 이제 싸주지마. 안 잘려서 못 먹겠어.” 엄마는 나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고 그날 이후 나의 도시락에는 여전히 팽이버섯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도 양심은 있습니다. 반찬 투정은 한 번이면 족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