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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Dec 22. 2016

문학 그리고 법학, 나의 두 전공에 대하여

小訴한 기록1_문학, 그리고 법

1. 문학과 법이라 함은 언뜻 보기에 매우 개별적인 타자로 인식된다.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자유의 상징임에 반면, 법은 인간의 생활을 규율하고 질서하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과 법은 모두 인간의 삶 속에서 시작된 것으로, 개인의 가치관과 공동체의 사유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문학과 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당대의 사람들, 혹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신념을 내포한다. 둘은 서로 다른 포장지로 포장된 동일한 인간의 사유물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때문에 문학과 법은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장 최근 국내 법 체계를 변화시킨 국내문학의 예로는 <도가니>가 있다. 공지영 원작의 도가니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원작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에 대한 집중 조명 및 재수사가 이루어지면서 현행법의 개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 법은 도가니법이라 불릴 정도로 원작 소설이 법의 개정에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소설 도가니가 법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본래 법은 법적 안정성의 측면과 제‧개정권을 가진 권력층 간의 마찰로 인해 쉽게 제정 또는 개정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도가니가 보여 준 것처럼 문학은 집단의 부조리로 인한 개인의 희생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공분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이 때 개인의 분노가 모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촉발시켜 궁극적으로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이끌게 된다. 물론 도가니와 같은 모든 고발 문학이 법의 변화로 곧장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이나 김수영 등의 현실참여적 저항시로 대표되는 민중문학들은 분명 민주화로의 발로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전야에 민중에게 뿌려졌던 시예스의 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문학은 법과 제도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문학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넓어지거나 반대로 한정되기도 하며, 표현 방법의 다양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의 신분사회 붕괴는 곧 우리 고전 문학의 양적‧질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소설은 양반 계층 보다는 여성이나 평민 계층에서 보다 많이 향유되었다. 신분 제도의 붕괴와 함께 평민들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신장되면서 자연히 문학작품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문학의 보급률이 급속도로 증가하며, 다양한 작가층이 형성되고 새로운 소설들이 많이 쓰여 졌다. 뿐만 아니라 책을 대여해 주는 책방이 생겨났고, 필사본과 함께 판각본이 출간되면서 인쇄기술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살펴본 것처럼 문학과 법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으로 정의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문학은 법 중에서도 ‘헌법’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이란 모든 법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그 아래에 존재하는 형법이나 민법 등과는 달리 개방성을 가진다. 하부법이 해당되는 사항에 대해 직접적이고 일관적인 형태로 적용되는 것에 반하여, 헌법은 구체적이거나 상세하지 못하며 그 조항이 개방적임과 동시에 추상적이다. 헌법 제 10조의 행복추구권이 거의 모든 헌법소원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헌법은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유동성을 가지고 접근하여 시대적 변화에 탄력적 대응이 가능해야 한다. 법은 공동체의 전체 안정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 수단이기 때문에 삶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문학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다만 법(헌법)의 경우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관점이 변화의 범주 내에서 해석 되는 존재이나, 문학의 경우 사회의 변화를 앞서가거나 유발시키기도 한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2. 문학적 능력이란 우리가 문학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때의 이해는 독자로서의 이해이기도 하고 반대로 문학을 창조해내는 작가로서의 이해이기도 하다. 문학은 작가자신의 온전히 독자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관습과 전통에 따른 규범들에 따라 언어가 일정한 양상으로 규칙되어진 형태이다. 이때,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내재된 관습에 따라 문학을 창조하며 독자는 다시 이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문학적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문학적 능력은 같은 관습을 공유한 이들 사이에서 더 원활하게 발휘되며, 반복적 체험을 통해 더 나은 문학적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 저항시의 상징적 존재인 김수영 시인의 작품 <눈>은 총 세 편으로 각각 1956년, 61년, 66년에 쓰였는데 공통 소재인 눈이 가진 이미지는 순수한 생명력과 저항성을 나타낸 것으로 세 작품 모두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1956년에 쓰인 <눈>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 때의 눈은 살아 숨쉬는 순결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눈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의 하얗고 깨끗한 성질을 바탕으로 정화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다. 또한 변증법적 사유에 따라 눈이 정(正)을 상징한다면 그것에 반(反)하는 것이 등장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 내부에서 기침과 가래가 더럽고 병들었다는 본래의 인식을 바탕으로 부패한 사회상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추측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눈>에서 행동을 취할 것으로 요구되는 주체는 ‘젊은 시인’인데, 여기서의 젊음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독자는 이 시인이 아직 사회적으로 성장하여 커다란 힘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진실한 삶에 대한 열정과 때 묻지 않은 순수성을 지닌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젊음이라는 단어가 관습적으로 독자에게 이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시에서 눈은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강조되는 존재이다. 1연에서 '눈은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는 부분과, 3연의 '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를 통해 총 2개의 연에 걸쳐 눈이 생명력을 가진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때의 눈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승의 이미지를 양적 대상으로 해석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하강의 이미지는 죽음과 결부되어 음적 대상이자 부정적 이미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시인은 1연의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눈을 통해 죽음의 상황에 내몰렸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는 눈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또한 3연의 눈은 죽음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살아 있는 존재인데, 독자는 영혼과 육체는 본래 하나를 이루지만 죽음으로서 서로 분리되는 대상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3연에 등장하는 영혼과 육체는 이를 초월한 존재이므로 곧 결연한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내포했음이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전달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언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단어의 사용만큼 중요한 것은 어조이다. 어조를 통해 작가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김수영의 <눈> 2연은 다음과 같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김수영은 '기침을 하자'는 동일한 청유형 어미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시를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 역시 간곡한 어조로 청하는 태도가 반복법과 점층법으로 심화되며 나타나는 것에서 시 속에 담긴 의지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는 4연의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는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문학적 능력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거나 해석하는 행위가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인간의 삶의 표현이기에 관습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들의 표출이다. 당대의 독자들이 김수영의 <눈>을 읽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시인과 독자 모두가 같은 관습적 해석이라는 문학적 능력에 따라 시적 언어를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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