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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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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Dec 18. 2016

안녕 2016

조금 많이 이른 것 같은 2016 정리.

1. 1년 정도 연락이 끊겼던 아는 오빠와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겨울밤은 길다지만, 저녁 아홉시에 만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오빠는, 오빠만큼이나 내 기억 속 저 밑바닥에 파묻혀있던 누군가의 비보를 전했다. 오빠와 나는 3년 전쯤 소아병동 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있는 아이들에게 한글과 셈 따위를 가르쳤다. 그리고 유난히 오빠를 따르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병과 싸우기엔 너무나도 연약해보이던 입가가 늘 파르스름했던 아이. 유난히 웃음이 비쌌던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는 매번 그 아이에겐 쉬운 받아쓰기 문제를 내주곤 했다. 특별히 잘 구분했던 받침이라든가, 아이가 좋아했던 아이돌 노래의 뜻도 모를 가사 같은 것들. 1번부터 9번까지, 자신감 있게 연필을 눌러 꼬깃꼬깃 글자를 써 내려가는 아이의 뒤통수를 다시 내려다보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내는 받아쓰기의 10번 문제는 늘 ‘튼튼하고 바르게, 건강하고 씩씩하게’였다. 이윽고 받아쓰기 채점이 끝나면, 아이는 늘 오빠를 찾아 두리번대곤 했다. 1번부터 10번까지, 숫자마다 쳐진 붉은 동그라미와 큼지막하게 적어준 100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깍두기 노트를 들고. 튼튼하고 바르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10번 문제였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깍두기 노트의 주인이 사라졌다. 졸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 삶만 바라보고 사는 동안 가버렸다. 울먹이는 오빠를 달래고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는데 코 끝에 병동의 그 알싸한 향이 스치는 것 같은 느낌은 차마 어쩔 수 없다. 가끔 여럿을 모아놓고 책이라도 읽어주는 날이면, 서로 제가 더 가까이 앉겠다고 달겨들던 아이들에게선 살풋한 아가내음이 났었던 것 같은데. 아스라이 멀어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싶다.

2. 나름 삼시세끼까진 아니더라도 두 끼니 정도는 꽤 잘 챙겨먹고, 하루에 물도 2L씩 꼬박꼬박 마시는데.. 여름엔 더워서 혈압이 떨어지고, 겨울엔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어서 손발이 저려온다. 저혈압은 어느 날 아침에 훅 갈 수 있으니 조심하고 살라는 소리를 십년쯤 들으며 반복되는 겨울. 비보를 가져온 통화를 끊고 방바닥에 모로 기대 누워 저린 팔을 주무르는데 어쩐지 이것도 사치다 싶어 몸을 일으켰다. 주인이 게을러 아직 제 자리로 가지 못하고, 포장이 풀리지도 않은 채 책상 밑에 숨어있는 다이어리 박스를 끄집어냈다. 작년 이맘때엔 뭘 했었나 싶어서 작년도 다이어리를 펼치니, 죄다 회사일과 회식 체크 뿐. BSC를 억지로 쥐어짜내고, 일 년치 사업비 정산을 하면서 내년도 사업 기획 PT를 준비하느라 피 말랐던 시간들. 매일 11시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남초 회사의 제일 어린 여자 직원이라는 이유로 일주일에 사나흘은 회식자리에 꼬박 앉아 자리보전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던 아저씨들의 웃기지도 않는 얘기를 받아줘야 했던 지겨운 나날들. 연봉재협상도 다 마다하고 이직을 하겠다 선언했던 나에게 그들은 한국에서 여자로서 다닐 수 있는 최고로 안정적인 직장을 걷어찬다며 혀를 찼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보다 훨씬 앞에 서있다. 물론 지금도 내게 가장 잘 맞는 신을 신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무슨 신을 신고 있든 간에 내가 딛고 있는 길은 내가 가고자 했던 그 곳에 닿아 있음을 아니까. 가지고 태어난 모든 조건들이 만족스러운 삶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 닿게 해주신 사람들에게 만큼은 더없이 감사하는 삶이다. 나와 매우 다른 사람임에도 나의 잣대를 무조건적으로 접어두고 온전히 나의 삶에 받아들이고 싶을 만한 어른이 있다는 것은, 내겐 매우 이례 없는 일인 동시에 더 없이 행복한 일.

3. 오랜만에 이렇게 긴 글을 남기는 것은 무엇이라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존재의 사라짐 앞에서, 문득 내 삶의 기록에 애착이 생겼다는 것에 조금은 혐오스러운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화면 속 쿼티자판을 부지런히 두드리는 중이다. 엄지손가락 두 개로 퇴고 없이 남기는 글이니 딱 그 만큼의 무게로만 남았으면 좋겠다. 어제자 기사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2 제작을 포기했다는 내용을 봤다. 현실의 어처구니 없음이 영화적 연출을 이겼기 때문이란다. 여러모로 어마무시했던 한 해였다. 내 일상의 안위를 위해 간과하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에 풀칠한답시고 무시하며 살았던 것이 얼마나 무지한 행동이었는지 절절히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일상 그 자체라 생각했던 것과의 끝을 고한 것, 그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었지만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과 직면했다. 늘 내 것이라 믿었던 반지를 빼서 금은방에 가져다주니, 대신 내 손에 십 삼 만원이 쥐어졌다. 꽤 오랜 시간과 맞바꾸었다 생각하면 얄팍하고 알량한 돈 몇 푼. 내 돈 칠 만원을 더 보태어 유기동물 센터에 송금하는 것으로 내 맘대로 마침표를 찍었다. 어쩐지 웃기는 일이다. 이직, 이사, 그리고 또 한 점에서 한 점으로의 건너뜀들 사이에서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얼마 되지 않는 내 삶의 기준들에 절대적으로 목매고 살아왔는데, 그 중에 몇 개를 버렸더니 이전까진 살아 본 적 없는 생활 위에 놓여있다. 다시 주워 담진 않더라도, 궤도를 잘 지켜야지 싶다. 예상치 못했던 삶의 변화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오고, 오늘 갑자기 날아든 비보만큼이나 갑작스러운 것일 테니까.

4. 글을 올리면서 2011년부터 연말마다 페북에 올렸던 한 해의 정리 글을 다시 읽었다. 몇 개의 글은 내 삶의 변화 때문에 나만 볼 수 있게 설정해 둔 글이 되었지만. 늘 다음 해에 대한 낙관으로 끝맺음을 냈던 걸 보니, 진짜 남들 보여준다고 썼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님 애써 불만과 리스크를 무시하고 자기위로를 했거나. 올 해의 끝자락엔 그러지 말아야지, 제대로 보고 낙관적 기대가 아니라 현실적인 계획을 해야지 싶다. 12월 1일부터 송년회 스타트를 끊었음에도, 전혀 연말같지 않았었는데 어쩐지 오늘 끄트머리와 마주한 느낌에 이른 연말 글을 썼다. 아직 안녕 2016이라고 말하기엔 많이 이른 것 같지만, 그래도 안녕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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