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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Jul 16. 2018

사랑해, 울할머니

小訴한 기록15_발가락이 닮았을까

 할머니, 엄마와 나는 같은 핏줄임에도 셋다 어느 집엔가의 딸로 태어나 성씨가 다 다르다. 우리 할머니는 장씨인데 황씨에게 시집가서 황씨 딸을 낳고, 엄마는 김씨인 울아빠를 만나 내 성씨는 김씨가 됐다.


 그럼에도 할머니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들여다 보면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으리라 믿는다. ‘발가락이 닮았다’던 M처럼 내 얼굴, 내 모습 어디에서든 할머니를 찾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 셋은 하나의 성씨로 묶이지만 않았을 뿐, 엄마는 할머니의 절반을, 나는 다시 그 절반을 물려 받았으니까. 사실 나의 1/4쯤은 할머니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지난 주말 할머니를 모시고 엄마, 이모, 사촌과 함께 산정호수에 다녀왔다. 맛있는 간장게장도 먹고, 호숫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옥수수도 먹고. 요즘 일도 많고 몸도 피곤해서 사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정이 싫었는데, 문득 앞으로 몇번이나 할머니가 나를 기다려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여기저기 뽈뽈대고 돌아다니다가도 항상 돌아와 보면 할머니가 계셨는데, 이젠 할머니의 부재가 아주 먼 일은 아님을 느낀다. 그런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는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제 아무리 피하고 싶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마주 해야만 할 피할 수 없는 순간이겠지.


 그냥도 예쁜 우리 할머니. 그래도 노인정 놀러가실 때 더 곱게 바르시라고 립스틱을 두어개 골라 선물했다. 다 쓰시면 또 사드릴게 얘기해! 하는 내 말에, 할머니는 '이거 다 쓸때 쯤이면 할머니 없지' 하고 대답했다.


 지난번, 장마로 비가 너무 많이 내리던 날 저녁 혼자 계실 할머니가 걱정되어 전화를 했었다. 별일 없이 잘 계시다는 할머니, 저녁은 먹었냐 물으시기에 집 가는길에 두부를 사다가 된장찌개를 끓여먹으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니가 혼자 찌개도 끓여먹어야?' 묻는 울 함미. 그럼! 할머니, 나 이제 다 큰 어른인데 그정도는 하지!


 내가 집에서 혼자 밥도 해먹는다니까 기특하셨는지, 된장이며 고추장을 새 병까지 사다가 담아서 포장해 놓고, 이모들이며, 삼촌들이며 전화를 해서 “우리 애기가 이제 밥도 혼자 해먹는단다.” 자랑하는 울할미. 


 사랑해 함미, 엄마아빠한텐 애기소리 듣는거 어쩐지 질색하는 나지만, 언제까지고 함미에게는 애기이고 싶어. 할머니가 내 립스틱 선물을 앞으로 딱 열 번만 더 받아줬으면.. 사랑해 울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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