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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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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Jul 31. 2018

냉방병에 걸렸다.

 저녁 아홉시 사십칠분을 넘기는 지금 이순간. 손목의 시계가 바깥 기온이 무려 37도임을 알려준다. 응? 37도..

'열대야'라는 말은 이제 의미 없는 말이 되었다. 밤이 되었는데도 바깥은 전혀 시원하지 않다. 불이 켜진 찜질방에 불이 꺼졌을 뿐인 것 같은 날씨. 뉴스는 매일 '내일 올여름 최고 더위'라는 뻔한 문구를 반복하고, 유난히 더웠다던 1994년과의 비교를 멈추지 않는다. 네 살이던 1994년에는 물이 담긴 대야 속에라도 들어가 있었지만, 이젠 대야에 들어가기엔 좀 큰 어른이 되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여름엔 냉방비로, 겨울엔 난방비로 나가는 기분이다. 더우니 어쨌든 에어컨을 켜야 한다. 사실 나는 땀도 별로 안 흘리는 편이고 더위도 별로 타지 않는 체질이었는데, 재작년부터 '더위'가 무엇인지 체감하는 몸뚱이가 되었다. 정말로- 날씨가 너무너무 더워져서!!! 매일 33~35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계속되던 재작년의 여름날, 어느날 기온이 좀 내려가 30도를 찍자 '오늘 좀 시원한 것 같은데?'라는 말을 내뱉고, 동시에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북극곰아 내가 정말 미안해..


 그리고 올 여름엔 개도 안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렸다. 감기라기보다는 냉방병인것 같은데, 바깥의 더운 날씨와 에어컨을 켠 실내 공기 사이에서 몸뚱이가 버티질 못했다. 지난주 화요일 새벽, 눈을 떴는데 어쩐지 목이 칼칼한 것이 감기가 오겠구나 싶어서 바로 병원에 달려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기침. 목에서는 가래가 끓고 곧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듯이 숨넘어가는 콜록임이 이어진다. 두통과 현기증 사이에서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니 아픈 몸이 지겨워 참을 수가 없다.


 이 더위에, 호사스럽게도 무슨 '냉방병'이란 말인가.. 이 더위에 시원하게 있을 수 있음은 사치이자 행복인데, 찬 바람만 닿으면 더 심해지는 기침이라니! 오늘 아침에 병원을 세번째 재 방문하고 돌아왔다. 약을 먹으려고 어거지로 밥을 먹고 입에 약을 털어 넣었는데, 물에 잠기듯 몸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사무실 의자에 몸을 뉘였는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기절하듯 딥슬립. 누군가는 더위에 잠을 설치는 이 더운 여름밤, 나는 기침과 싸우는 중이다. 어찌할 수 없는 더위보다는 훨씬 호사스러운 일이라 스스로 위로해 본다. 제발 오늘 밤은 기침으로 깨지 않는 밤이 되길. 이제 겨우 8월의 시작인데, 벌써 가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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