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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Mar 31. 2023

걱정으로 포장한 무례함에 대하여

누가 물어봤나요?



 "딸이 중간 역할을 잘해야지. 나이 들어서 혼자 살면 얼마나 안 됐어, 재결합하시는 게 제일 낫지. 다정씨가 부모님 설득해서 재결합하시게 해."

 "이런 이야기는 사장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죠.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부모님이 알아서 할 일이에요. 힘주어 말하는 내 눈을 보는 사장님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나는 다정씨 생각해서 이야기해 준 거지. 두 분이 따로 있으면 나중에 다정씨가 다 챙겨야 하잖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고요. 각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니 나는 다정씨가 내 조카 같기도 하고…"


 사장님의 말을 끊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뜨거워진 속이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일한 회사에서는 서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아빠나 동생에게 문제가 생겨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때도 있고, 엄마가 한 번씩 다녀갈 때 쉬기도 하고 하다 보니 부모님의 이혼은 비밀이 될 수 없었다. 꼭 비밀로 할 이유도 없었고. 그런데 그걸 안 이후로 사장님은 ‘너를 위해 하는 이야기’라며 걱정을 가장한 무례한 이야기들을 해댔다. 주된 내용은 늘 같았다. 부부라는 건 그런 거다 아무리 싸워도 또 붙어있으면 괜찮아진다, 그래도 떨어져 있으니 후회하실 거다, 지금이라도 재결합하도록 도와 말년에 두 분이 함께 지내게 해라, 네가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등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들, 나는 매번 못 들은 척 무시로 일관하다 무시하는 것 만으로는 그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미친놈 아니야?"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지. 남의 가정사에 뭔데 말을 얹어 자꾸. 맨날 나한테 애정이 있어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웃기지도 않아."

 "얼씨구?"

 "내가 몇 번을 말해. 일로 만난 사이, 애정은 돈으로나 표할 것이지 재결합 같은 개소리를 하고 있어 짜증 나게. 내가 진짜 지 조카고 진짜 지 자식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 인간이 왜 역지사지가 안돼. 지 자식도 밖에 나가서 똑같은 이야기 들었다고 하면 거품 물고 달려들 거면서." 

 "인간 아니다 아니야. 지는 백년해로 할 것 같나, 사람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주제도 모르고 꼴값이야."


 영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나는 그 말에 또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걸 느끼며 그래도 이렇게 털어놓을 사람이라도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런 류의 참견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 빼고는 걱정되어 하는 말인데, 하며 말을 얹기 바빴다. 정작 내 인생에 저마다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 말인데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사람들이 단편적인 사실만 보고 판단하고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잊지 마, 너네 부모님 이혼에 네 잘못이라는 건 없어. 거기에 매몰돼서 네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의 참견이 휩쓸고 지나가면 나는 어김없이 괴로움의 늪에 빠져든다. 정말 내가 무언가 해야 하는 걸까? 함께 있는 게 지옥 같아 헤어졌는데, 아무리 싸워도 함께 있으면 괜찮아지는 부모님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디선가 잘못이해하고 생각한 걸까? 모르는 이야기를 멋대로 상상하려니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날 엄마와 했던 통화를 다시 떠올렸다.


 "아빠가 자꾸 너 힘들게 하면 그냥 엄마한테 보내. 엄마가 데리고 살게."

 "엄마가 결혼에서 어떻게 도망을 쳤는데 그런 소리를 해?"

 "내가 괴로운 게 낫지 내 자식 괴롭히는 꼴은 못 봐. 내 자식 힘들게 하는 거 너무 싫어."

 "아이고, 됐네요 됐어. 엄마보다 젊은 내가 아빠 감당하기엔 훨씬 나아. 엄마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 그냥 이야기만 들어줘도 나는 또 힘이 나니까 걱정하지 마, 괜찮아."


 그리고 그 대화를 한 다음날 새벽,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어? 안 자고 왜 전화야?"

 "다정아, 내가 있잖아, 자다가 갑자기 니 아빠가 했던 나쁜 짓, 모진 말들이 생각나면서 눈이 번쩍 떠지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엄마는 너무 끔찍해서 니 아빠랑 같이 못 살 거 같아.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름 끼쳐, 안되겠어."

 "푸하하 뭐야, 내가 설마 아빠가 나 힘들게 한다고 엄마한테 어떻게든 책임지라고 그러겠어?"

 "너한테는 너무 미안한데 안될 거 같아. 엄마는 다시는 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지가 않아."


 엄마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지옥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는 엄마의 괴로움을 알지 못한다. 아빠가 말하지 않았던 아빠의 마음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까만 새벽, 눈이 번쩍 뜨이는 엄마를 생각하면, 강산이 변할 만큼 시간이 지났어도 절대 ‘엄마’라는 단어조차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아빠를 생각하면, 둘이 함께 있는 그림은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뱉는 사람의 입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십 대 초반의 이야기다. 대인기피증이 심각한 수준이었던 때가 있다.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는데, 어딜 가나 심심찮게 보게 되는 가족들을 보는 것이 힘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냥 흔히 길에서 볼 수 있는 가족,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 그걸 보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왜 그게 하필 그때, 갑작스레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트를 가거나 산책을 가거나 할 때 다정히 지나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길에 주저앉아 울음을 토하는 날들이 자꾸만 늘어갔다.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을 매번 우는 것으로만 해결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닐만한 낮에는 집에만 있고, 밤이 되면 강아지와 함께 밖에 나가 걷곤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더라도, 바람을 피더라도, 사이가 안 좋더라도 가족을 깨지 않고 어떻게든 유지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다 이내 못된 년, 지 마음 편하자고 불구덩이에서 있던 엄마가 참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쁜 년, 하고 자책했다. 그래,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 같은 평정심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는 나만 아는 일이다. 나는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마음으로 매 순간을 견뎌왔는지는 나만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부모님의 이혼도 마찬가지다. 그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 타인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그 안에 살아보지 않은 그 누구도 그 선택이 경솔했다거나, 잘못 판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딸인 나조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런 이야기를 듣는 일이 왕왕 있다는 건 엄마나 아빠에게도 저런 류의 걱정을 가장한 폭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엄마는 맨몸으로 이혼을 하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네 세월도 그렇고 애들을 생각해라도 악착같이 재산을 받아냈어야지.’ 

 ‘그건 네 몫이 아니고 애들 몫인데 애들을 위해서 받아야지. 그건 정당한 요구야.’


 엄마는 내가 잘못생각했나, 너무 나만 생각했나, 하는 괴로움에 빠졌다. 실제로 도움이 필요하던 나이에 아빠가 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리면서 내가 고생을 하기도 했고, 엄마는 나를 넉넉하게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해서 더 그랬다. 나는, 엄마가 그래도 아빠한테 몇 푼이라도 받아서 너를 도와줬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고 말할 때마다 이야기했다. 내가, 우리 집이 풍족해서, 늘 또래보다 넉넉했던 용돈이 나를 행복하게 했던 적이 있느냐고. 많은 걸 누리고 산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가 정서적으로 한 순간이라도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낀 때가 있느냐고. 이혼을 거부하는 아빠를 상대로 애들 몫이라도 챙기려 싸움을 시작해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고. 돈은 어떻게든 벌면 되지만 그 안에서 회복할 수도 없을 만큼 다치는 엄마를 보는 일이 내게는 더 괴로운 일이니 그런 말들은 외면하라고. 경제적인 풍요로움도 중요하지만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은 평화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옆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엄마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보다, 궁상떨며 아끼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갖고 싶은 것들을 외면하며 사는 일이 훨씬 나았다. 엄마의 불행이 나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기에 차라리 경제적인 힘듦이 수천, 수만 배 나았던 날들. 


 나는 그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엄마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말들을 아이들 생각한답시고 하는 사람들. 본인은 말로만 툭 뱉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말들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엄마를 보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왜 이렇게 사는지 설명해야 할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타인을 납득시켜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럼 그들은 걱정이랍시고, 충고랍시고 함부로 그런 말을 해도 될까? 아니, 그래선 안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내가 한 선택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내가 안고 가야 한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지금 나의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알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은 그 길이 가시밭길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누구도 그 선택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사실 긴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다. ‘누가 물어나 봤냐’고. 누가 우리 부모님 각자 살고 계셔서 연로하시면 내가 따로 챙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이라도 구했느냐고. 당사자들 마음에도 없는 미래를 왜 본인들이 걱정하고 계신지. 


 나는 사장님이 꼭 백년해로하면 좋겠다. 사장님이 너무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들이 밖에서 이런 무례한 이야기에 상처받지 않도록, 오래오래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다. 사고처럼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그런 사건 없이 살면 좋겠다.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참을 줄도 아는 어른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 수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매번 그런 말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날카롭게 자를 것이다. 아마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둘 때 까지도 그런 말들이 얼마나 무례한 이야기인지 모르고 또 할 테지만, 사장님의 어린아이들이 나 같은 괴로움은 겪지 않고 잘 지내면 좋겠다. 


 정말로, 그들은 내가 사는 세상을 몰랐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상처를, 

 걱정으로 포장한 무례한 말들로 헤집어놓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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