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기에.
안녕,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따금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지만 늘 그랬듯 다시 또 고요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묵묵히 견디는 것으로 깊고 어두운 순간들을 넘기곤 합니다. 그곳의 날씨는 어떨까요? ‘바다너머 있는 모두를 그리워한다’는 말과 다르게 요즘 저는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고,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며 살고 있어요. 이런 평화는 한동안 새로운 것이었다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고요함이 늘 그리웠어요.
작년 한 해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묵묵히 견디며 새로 맞이했던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제게 잔인한 한 해였어요. 연초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검진을 했고,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스스로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던 늦 봄, 동생을 잃었습니다. 그 일이 트리거가 되어 과거의 것들까지 다 일어나 저를 삼켜버렸고 중단했던 상담 치료와 약물 치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새해, 한 살 더 해진 내 나이를 보며 동생은 영원히 서른하고 몇, 그 나이에 머물러 있겠구나 싶어 참 많이 슬펐어요. 늘 새해가 다가오면 꼭 한 가지씩은 지나온 해에 두고 새해를 맞이하겠다며 다짐하곤 했는데, 2024년에 두고 오게 된 것이 동생이 된 것 같아 쉽지 않은 날들이었습니다. 동생을 잃으며 생각한 것들이 많았어요. 그 어떤 생각도 말이나 글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언젠가는 기록을 해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여전히 진행 중인 치료가 끝이 나고 괜찮아진다면, 그 아이의 삶을 내 손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해요. 같은 부모를 나눠가진 둘,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보내고 나서야 늘 거기에 있어 당연히 여기던 그 존재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사실, 새해를 맞이하며 두고 오려고 생각한 것은 수면약이었어요. 잠을 자는 일이 큰일이 된 지 이십 년이 가까이, 편안하게 잠드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하며 내가 해결했다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이 내 안에 그대로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기억해 내고, 직면해 살피고 정리해야만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단 사실도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여전히 수면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패턴을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 끝에 한 달 전, 수면을 돕는 약 세 가지를 중단했고, 나름의 패턴을 잡아가며 노력하고 있어요. 매 회기마다 잠은 잘 주무셨냐고 묻는 상담선생님의 말에 시원스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있지만 더 편해질 날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동생의 일은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상흔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점도 있어요. 동생 장례를 준비하며 이혼 후 완전히 단절되었던 엄마와 아빠가 재회하게 되었고, 동생과 함께 살던 아빠가 우리 집에서 석 달을 함께 지낸 후, 같은 아파트로 이사해 3분 거리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에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가족이 가까이에 산다는 것은 근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쉽지 않지만, 나름 좋은 점들도 있어요. 잘 모르고 살던 것들이요.
찬찬히 앉아 지난 1년을 생각해 보면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지독히 변하지도 않는 게 사람이라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흐르듯 몸을 맡겨 지금이 되고 보니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습니다. 그저 살아남는 일에 바빴던 다정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막연한 행복과 평온함을 원하던 다정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행가능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고 싶어 합니다. 지금의 나이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 그 깨달음이 다른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저보다 어린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그 일이요. 정면으로, 눈앞으로 요란스레 밀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조용하게, 몰래 우리를 덮쳤어요. 방비할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죽음까지도요.
오늘의 내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저 살아있는 걸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귀한 시간입니다. 존재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지만 저는 그것에 만족하며 머물지 않기로 했어요.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약속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네 몫까지 열심히 살다가 갈게. 그러니까 꼭 다시 만나.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동생의 죽음 이후의 시간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던 슬픔은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좋아 기분이 좋은 어느 날은 참을 수 없이 슬퍼지기도 해요. 이렇게 좋은 세상을 조금 더 살다가지, 하는 마음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올 때면 도대체 이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단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좌절과 슬픔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몇 달 사이에 많이 늙은 아빠와, 매일 아침을 눈물로 시작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멋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제 엄마 아빠의 유일하게 남은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아들을 사랑하던 부모님은 그 아이가 이렇게 일찍 가려고 평생 받을 사랑을 한꺼번에 받았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늘 아들에 밀려 두 번 째였던 딸, 그 설움은 동생의 떠나고 나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한 번을 이기지 못했던 아들이라는 존재, 이제는 사라져 영원히 부모님 마음에 박혀버린,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이길 수 없는 존재. 참 못난 마음이었어요. 평소 같으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말들을 엄마에게 하며 상처를 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그저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제 그 아이는 먼 곳으로 떠났으니, 그저 평생 받을 마음을 일찍이 다 받고 간 거라고 생각하자고 했어요. 이제 혼자서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더 많으니 이제는 너도 마음 편하게 지내라고, 그렇게 네 설움도 보내주자고요. 제 안에 일어나던 적나라한 감정들은 슬픔이었다가, 분노였다가, 절망이었다가, 또다시 슬픔으로 끊임없이 피어나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마 시작과 끝, 모든 일을 다 해야 했던 저는 시작부터 극단의 상태에 몰려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지난한 과정들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안은 부모님이 저까지 살필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서로를 보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존재를 떠올리며 끝없는 슬픔에 잠기던 날들….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시간들, 당장 눈앞의 하루를 버텨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해가 바뀌어 다시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거울을 보았을 때, 새치 정도였던 흰머리가 제법 많아져 정말 치열하게도 발버둥 쳤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힘 좀 빼도 되지 않을까,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이제 다시 마음을 글로 꺼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안에서 꺼내어지고 이야기 나눌 때 비로소 나아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그럴 수 없다며 울던 저는, 이제 다시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기록하는 것으로 다시금 기억하고 정리하여 내 안에 차곡차곡 두려고 합니다. 요즘 엄마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처럼, 그래도 살아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려고 해요.
그렇게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