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1일
[다정, 통화 가능해? 우리 딸 목소리 듣고 싶은데.]
월요일 점심때였다. 주말 내내 엄마의 문자에 거의 답장을 하지 않아 오늘은 통화를 피할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번 인사는 잘 지내냐는 안부. 잘 지낸다는 말에 자꾸 내가 마음에 걸린다는 말을 하는 엄마의 말을 끊으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말에, 너네 고모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고모가? 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같이 살자고 하시는 거야.”
에? 뭐라고?
전화기를 조금 더 가까이 귓가에 가져다 댔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어차피 엄마도 혼자 살고 고모도 혼자 사니까 둘이 같이 사는 게 어떻냐는 거지. 나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둘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야?!”
끅끅거리며 웃는 내 목소리에 지지배, 하고 엄마도 웃었다.
몇 년 전, 사촌언니가 고모에게 엄마 번호를 알려주어도 되냐고 물었다. 이혼 후 엄마는 당연하게도 전 시댁 식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나 역시도 부모님의 이혼 후 대부분의 친척들과는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다섯 살 차이 나는 사촌언니와는 간간이 안부를 물으며 지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고모가 엄마가 보고 싶다며 언니에게 번호를 물어온 것이다. 언니는 엄마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물어보고 괜찮다면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고모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언니와 함께 고모를 만났다. 이십여 년 만의 만남이었다. 엄마는 고모를 어제 본 것 같다고 했다. 가족으로 세월을 보냈다는 건 어떤 걸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결혼으로 가족이 되고, 이혼으로 다시 완전한 남이 되어버린 사이. 그럼에도 그 가족이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만나 얼굴을 보니 또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언니는 여전히 엄마를 외숙모라고 불렀고, 고모도 늘 그렇듯 내 이름을 붙여 엄마를 불렀다. 다정아, 잘 지냈니. 그렇게 한 번의 만남, 그 후로는 간간히 전화 통화를 하고, 안부문자를 주고받으며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고모가 엄마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무려 같이 살자고.
“도대체 왜? 둘이 너무 이상한 거 아니야? 전 시누이랑 같이 산다고? 아니, 현 시누이여도 이상한데 전, 무려 전! 시누이랑?”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따발총처럼 말을 쏴대는 나와 달리 엄마는 차분했다.
“고모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잖아, 영 적적하신 모양이더라고. 고모네 근처에도 일 할 데 많다고 어차피 나도 혼자 사니까 고모네 근처에 일 구해서 같이 살자고 하시대.”
“그래서? 뭐라 그랬는데 엄마는?”
“웃었지 뭐, 너 엄마 몰라? 나는 이모들이랑 있는 것도 불편한 사람인데 같이 못살지!”
그렇다. 엄마는 피를 나눈 형제도 불편해하는 사람으로 혼자 사는 것에 최적화되어있다. 이모가 십오 분 거리에 살지만 찾아가는 것도 찾아오는 것도 싫다고 말하는 사람. 어떻게 결혼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나 싶게 엄마는 혼자 있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다. 결국 흐지부지 하하 호호 웃으며 통화를 끝냈다고 말하는 엄마는 나와 달리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나이 들고 혼자 있으면 쓸쓸해서 그럴 수 있어.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이 들고 쓸쓸해도 그럴 수가 있나? 엄마 이혼했는데? 엄마는 아빠랑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는데? 계속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짐짓 점잖게 이야기했다. 나이 들면 그럴 수 있다니까.
정말 이상하단 생각만 하다 어느 순간 그 이상하단 생각이 멈췄다.
아…. 고모는 엄마를 좋아했었구나? 새로운 깨달음. 나는 둘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한다. 고모를 만나는 건 명절 때뿐이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 혹은 어린 시절, 엄마가 고모와 어떻게 지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엄마도 굳이 고모와의 관계를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명절에만 만나는 친척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들이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역사 속에서 쌓였던 어떤 친밀함과 정 같은 것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닐까? 나라면 어떨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보아도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가 생소한 걸 보니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해도 아직 멀었다 싶기도 했다. 역시 나는 아직 멀었어….
시간이 많이 지나, 이번에는 내가 비슷한 프러포즈를 받았다. 동생의 연인으로부터.
동생이 떠나기 전 마지막 생일이었다. 동생은 내가 있는 도시에서 일이 있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고, 친구를 데려오겠다고도 했다. 별생각 없이 동생의 생일상 차릴 준비를 하는데 문득 데리고 오겠다는 게 누군지 궁금해졌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사진도 두어 번 보긴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때다. 동생은 여자 친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냐는 내 물음에 생김새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때 사진으로 보여준 여자친구구나. 그때 알았다. 여자친구의 식성을 묻고는 좋아한다는 것으로 동생의 생일 상을 차렸다. 그리고 만남. 머릿속에 선명한 기억은 아주 체구가 작고 말랐다는 것과, 새 모이처럼 밥을 한 알씩 먹던 것. 낯을 가려서인지 무척이나 조용했고 상냥한 친구였다. 나는 엄마와 참 닮은 사람을 데려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꽤나 좋았던 첫 만남 이후 그 애를 다시 만난 건 동생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좀 뒤로 미뤄두기로 하고, 동생이 떠난 후 우리는 간간이 안부를 나누며 지낸다. 얼굴을 본 것은 두 번이 다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모두 불편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그녀가 하는 모든 말들이 위로가 되어 숨이 쉬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외동딸이 되어버려 여러 가지 고민으로 머리가 터지던 때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이 살지 않겠냐는 제안. 둘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어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갈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동생이 없지만 그래도 둘이서 계획했던 일이니 혼자서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혼자가 되었으니 외롭게 있지 말고 같이 살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고, 그 당황스러움이 잠잠해지자 슬픔이 밀려왔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고 있는 거구나.
그리고는 고모와 엄마를 떠올렸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참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나를 떠올려줘서,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끝내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사는 것도 못 견디겠고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다며,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저 지금은 슬퍼하라고, 이 슬픔이 옅어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그러니 생각나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이야기하면서 견뎌보자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주어 고맙다며 그녀는 전화를 끊었고, 며칠이 지난 어느 새벽에는 아이를 입양하려고 한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말미에 말했다. 네가 낳은 아이라면 그를 닮았겠지? 너네는 남매니까? 어떻게든 이어져있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 없이 슬프기도 했다. 나는 말했다.
지금은 충분히 그리워하고 또 슬퍼해. 그리고 동생 자리가 옅어졌을 때 다가오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밀어내지 말고 만나봐. 동생도 네가 평생 그 애를 그리워하며 아이를 입양해 혼자 살기를 원하지는 않을 거야. 네가 행복하기를 원했잖아.
주변인들 모두가 잊고 당장이라도 새로운 사람 만나라고만 하는데 그러지 않아 주어 고맙다며 그녀는 또 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온갖 생각이 다 들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함께 사는 어머니 앞에선 마음껏 울 수도, 슬퍼할 수도 없어 미칠 것 같다고, 이런 감정들을 네게 배설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이지 이럴 땐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슬픈 속에 잠겨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내 마음은 둘 곳이 없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상실이란 건 참 무서운 거구나.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게 하고 때때론 입 밖으로 내게 하기도 하고. 말하고 나면 스스로가 싫어졌다가, 또 안쓰러웠다가 온갖 감정에 매몰되게 하는구나. 아마 고모도 그랬을 것이다. 고모부를 잃고 나서, 혼자 남아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 가까운 피붙이에게 이야기하자니 그 슬픔이 모두에게 옮겨 붙을 것 같고, 가족이었지만 가족이 아닌, 남이지만 완전한 남도 아닌 듯한 사람이 엄마라 그랬으리라. 동생의 연인에게 함께 살자는 제안을 들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 상실을 공유하는 사이. 완전한 타인, 하지만 동시에 미묘하게 연결된 관계. 그 지점이 이 미묘한 프러포즈의 공통점이구나.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지만 말하는 것 만으로, 생각한 것들을 입밖에 내는 것 만으로 조금 편안해졌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엄마가 고모와 함께 사는 일이나, 내가 그녀와 함께 살게 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 내밀어진 그 말을 그저 받아주는 것으로 잠시 숨통이 트였다면 다행이다.
나 역시도 숱한 상실을 경험하며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의 경계가 모호해져 주변인들에게 쏟아낼 때가 있었지, 하고 생각하니 영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간절한 그 이야기들이 그저 의미 없는 찰나의 실수로 치부될 일이 아님을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