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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28. 2016

내일이 어제처럼 지루할진 몰라도

일상이 무료할 때의 기억력





다른 나라에서의

다른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지구본을 뱅뱅 돌리다가 손가락으로 콕 집어서 여기는 어떤 곳일까, 상상해보는 건 어려서 내 작은 취미였다. 어쩌다 걸린 데가 내가 태어난 나라라고 상상해 보면 한 없이 아득해진다. 그곳이 일본 미국 중국 혹은 영국처럼 내게 단편적으로나마 익숙한 나라라면 그래도 나을 텐데, 리투아니아의 크루트베나이나 볼리비아의 산타 크루소 같은 낯선 곳이면 어떨까? 도대체 내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머릿속이 새 하얗게 물든다.


냉정히 말하면 그건 익숙한 축에 드는 나라와 도시의 삶을 상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가 아니고서는 다 겪어보지 않은 일상일 테니, 마치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나 나올 법한 일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에 노르웨에서 태어났다고 상상해보자. 음 북극과 아주아주 가까운 코딱지만 한 어촌에서 태어나는 거지.


나의 늙은 아버지가 "허허 여보 오늘 잡은 고등어 녀석들이 죄다 뚱뚱한 게, 당신의 귀여운 뱃살 같구려 캬캬" 하고 방정맞지 못하게 웃으면 내 어머니 되는 사람은 삭힌 대구와 삶은 감자를 내어 놓다 잔소리를 할 거다. "실없는 소리 그만 하고 얼른 발이나 닦아요." 그럼 나는 증조할아버지쯤 되는 사람이 잡은 순록 가죽 위에서 ' 저 고등어 녀석도 한국이라는 나라까지 수출이 된다는데, 나도 이곳을 벗어나 오슬로로 대학을 가면 어떨까.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어!'라고 상상할 것이다. 이 작은 어촌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것에 통탄하면서!



노르웨이 트롬쇠 서바이벌 패션. 오리털 점퍼 안에 고어텍스 점퍼를 입고 그 안에 꼼꼼히 짠 스웨터를 입었는데 그 밑으로도 면티를 두 개나 겹쳐 입었다. 장갑은 물론 두 개를 껴야 한다.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잠시 장갑을 벗으면 두 장쯤 찍을 때 이미 검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노르웨이 북부 어촌의 일상을 담은 영화라고 하면 Cool & Crazy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Berlevåg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남성 중창단이 결성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전역으로 굉장히 유명한 영화인데 나는 이것을 오슬로 대학교 수업 때 처음 보았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노르웨이의 작은 어촌 마을, Berlevåg에서 어업이 줄어들자 점차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고, 바다와 더불어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사람들만이 조용하게 남겨진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어촌 마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어부 출신의 중년 남성들이 남성 중창단을 결성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전에 없던 자기 안의 열정을 하나둘 발휘하며 어디에도 없는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 나간다. 바다와 추위의 풍파 속에서도 일상의 연속과 숭고함을 지켜내고자 하는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삶은 중창단의 노래와 함께 고스란히 담긴다.



Cool and Crazy (2001)


다큐멘터리인 만큼 혹독한 추위와 눈발 속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어부들의 일상은 사실적이다. 잠자코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바다의 거센 파도와, 눈 쌓인 산과, 물고기들의 리듬에 따라가는 그들의 삶은 내게는 여전히 생경한 광경이지만 어디까지나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짐작도 할 수 없는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며 소소한 일상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나는 아득해진다. 어쩐지 지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무한한 곳은 아닐까, 덜컥 겁을 먹게 되는 것이다. 경외감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SBS 스페셜을 볼 때도 그랬고, EBS 세계 테마 기행을 볼 때도 그랬다.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과연 '말 그대로' 세계라는 곳을 걸어서가 아니라 뛰어서라도 가볼 수는 있을 런지, 곧잘 아득해지곤 했다.  


트롬쇠 여행 둘째 날, 오로라 투어를 가기 전에 들렀던  Nordnorsk Kunstmuseum (Northern Norwegian Art Museum)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잉그리드의 집에서 하룻밤 묵은 뒤 그다음 날 찾아간 곳이었다. 북부 노르웨이 미술관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중세 시대부터 전해진 노르웨이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적인 그림들에는 매서운 겨울과 추위에 맞서 싸운 노르웨이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Francois Auguste Biard 가 그린 < Kamp med isbøjrner >라는 작품은 박물관 대표 작품으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다. 우리말로 하면 북극곰과의 전투 (Fighting Polar Bears) 쯤 된다.



< Kamp med isbøjrner >


아마도 친구와 가족처럼 보이는 세 명의 사내는 나룻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곳이 북극 빙하와 빙하 사이였는지, 배고픈 북극곰들이 냅다 달려들어 이들을 방해한다. 금방이라도 나룻배와 사람들을 집어삼킬 것 같은 북극곰들은 왜 성이 난 걸까. 자신의 보금자리에 찾아온 불청객한테 겁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북극곰을 퇴치하는 사내의 손에는 기다란 창살이 달려있다. 마치 이런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경험해 왔다는 듯이, 창살을 잡고 북극곰을 겨냥한 본새는 노련해 보인다. 일행 중 어린아이는 제법 용맹한 얼굴로 겁에 질린 다른 일행을 다독이고 한 손으로는 북극곰을 저지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과 추위와 혹독하게 싸우는 법을 배워온 것처럼, 소년의 모습은 늠름하다.


화폭 속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는 북유럽 사람들이 극복해야 했던 혹독한 자연을 상상하게 만든다. 나는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한 줄도 모르고 그 앞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림 속의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북극권에서 태어난 옛사람들의 삶이란 그런 용감한 모습을 갖추며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는 여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은 것은, 단지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 속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일상은 더 다이내믹해 보인다. 나무로 만든 스키를 신고 북극곰을 피해 달아나거나 가족들과 추위를 피하게 하기 위해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린 동굴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겨울의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없었을 장면들이다. 이런 그림들은 모네나 마네의 서정적인 화폭 속에 묘사된 고즈넉한 풍경과는 또 다른 정서가 느껴진다. 자연을 극복해야 하는 인간의 격정적인 투쟁은 스칸디나비아 풍속화에서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유독 나는 자연의 격정과 섭리 속에 놓인 사람들의 정열적인 순간에 매료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 그림들을 보면서 다큐멘터리 Cool & Crazy를 떠올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곳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를 향한 겸허함 속에서 매일매일의 반복적인 일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그 모습은 반드시 창살을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목청껏 부르는 내 생애 첫 합창 노래도 된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별미가 된다



그런데 왜 노르웨이에 왔니? 한국에서 여긴 너무 먼 곳이지 않니?


나는 여행이 끝난 뒤, 노르웨이 트롬쇠 여행에서 만난 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잉그리드의 질문이 자주 생각이 난다. 그녀는 트롬쇠에서 나를 만난 줄곧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노르웨이까지 온 나를 신기해했다. 노르웨이 나이로 21살밖에 안 된 여자애가 혼자 떠나왔으니 몹시 용감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노르웨이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파랜드 택틱스 포가튼 사가 같은 RPG 게임과 요수 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부터다. 게르만 신화에서 비롯된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들은 지혜를 발휘하는 주인공의 모험과 감동으로 가득했다. 난관을 헤쳐나가며 한 명의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여정은 게임이나 문학으로만으로만 누리기엔 아까운 즐거움이었다.


가아더의 대표작인 <소피의 세계>는 국내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이 출판되기도. (사진 출처: 도서 출판 현암사)


나는 이런 모험의 영감이 되는 세계가 궁금했다. 미국이나 영국 말고. 반드시 북유럽으로 가자. 그곳을 나의 모험 베이스 캠프로 삼자.


여기에는 겨울의 시각적, 촉각적 이미지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한몫했다. 어쩌면 내가 그 신비로운 풍경 속의 일부로 서 있는 그럴싸한 장면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를 실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교환학생 제도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노르웨이에 올 수 있었다.


잉그리드는 내가 사랑스럽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노르웨이에 올 수도 있구나, 하면서. 그런데 어찌 보면 트롬쇠에서 만난 잉그리드는 내가 궁금해하던 그 세상 속에 사는 주인공이었다. 내가 상상 속에 그린 설국은 그녀에겐 그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대신 그녀는 학교에 다니면서 오로라 투어를 오는 사람들의 캠프 사이트를 관리하는 일을 통해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래서인지 보통의 내향적인 노르웨이 사람들보다 호기심도 많고 말수도 많은 편이었다.


다만 그녀는 몸이 좋지 않다. 집안에서 서서 소일거리를 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먼 거리를 걸어 다니려면 목발이 필요하다. 몸이 약하다 보니 호기심이 많은 그녀라도 마음처럼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건강에 관심이 많다 보니 설탕도 먹지 않고, 달걀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을 하고 있다. 대신 그녀는 카우치서핑으로 해외 여행자들과 친구가 된다. 카우치서핑은 그녀가 사랑하는 도시인 트롬쇠에 머물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었다. 그녀는 훗날 영어 교사를 꿈꾸고 있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생각 없이 툭 그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 어디서 선생님을 하고 싶은데?" 뼛속부터 글로벌 시티즌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던 것도 아니면서 왜 당연하게도 잉그리드가 트롬쇠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딘가로의 삶을 꿈꾸듯이 그녀도 그럴 거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리면서도 연륜 있게 웃었다.



하하. 네 눈에는 트롬쇠가 정말 작아 보이겠지만
사실은 여기도 내겐 너무 커.

나는 트롬쇠의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싶은걸.



순간 왜 그녀가 근사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이미 확신하는 듯했다. 자신의 작은 고장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강단 있고 차분하면서도 밝은 모습은 그녀의 집에 머무는 내내 내게 인상적이었다. 그녀에게 카우치서핑은 그녀가 그녀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가는 겸손한 비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조금은 불편한 자신의 몸을 분명하게 인지하면서도, 카우치서핑이라는 자기 만의 방법을 통해서 200명이 넘는 세계인들과 내 집 거실에서 교류하고 있던 것이다.

그녀에게 찾아간 나 역시, 그녀의 일상 속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잔뜩 싣고 찾아온 손님이었을 테다. 알고 보면 지구 상의 모든 삶이란 제각각에게는 평범한 법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게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신기하다. 별미 같은 거다. 보통 우리에게 별미라고 불리는 음식들이 열 무말이 국수 이거나 호박찐밥들인 것은, 그것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일상적인 음식이어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꿈꾸나 보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는 전혀 희한할 것 없는 일상이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런 것처럼.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산티아고의 아버지가 양치기가 되겠다는 산티아고에게 목돈을 쥐어 주며 이런 말을 한다. "이것으로 양들을 사거라.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맘껏 돌아다녀.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울 때까지 말이다." 여행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맛보고 입어보고 만나보고 사는 일이라는 게 모두, 인생의 확신을 찾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내가 타고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일도 그중 하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저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습니다."
  "우리 중에 떠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양치기밖에 없어."
  "그렇다면 전 양치기가 되겠어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버지는 주머니를 하나 건네주었다. 스페인의 옛 금화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언젠가 들에서 주운 거란다. 네 이름으로 교회에 헌금할 생각이었지.
이것으로 양들을 사거라.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맘껏 돌아다녀.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울 때까지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그래서 누군가는


어제보다 특별한 데이트를 기다리고

어제보다 맛있는 한 끼를 찾아다니며

어제와는 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20대의 여러가지 여행을 통해, 앞으로 수십년간 펼쳐진 나의 '어른으로서 평범한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온 것 같다. 일상은 곧잘 지루해진다. 지리멸렬한 출근 길, 끝을 모르겠는 야근처럼 말이다. 갖고 보니 내가 원하던 일상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혹독한 추위와, 난폭한 북극곰처럼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을 것들로 가득인 날도 있다.


다만 그 평범한 일상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 매일매일 먹고사는 것에 대한 책임, 자아의 자존감 만으로도 말이다.


대신 그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특별하게 지킬 수 있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잉그리드에게는 카우치서핑이, 나에게는 어제의 다정한 기억을 오늘과 내일을 위한 더 나은 동기부여의 문장으로 써내려 가는 일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브런치북 소개


좋은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 아니라 '기억해낼 수 있는 힘'이다. 최대한 많은 과거를 또렷이 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딱히 생산적인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대화나 사랑받았던 시간들을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늘과 내일의 더 나은 삶의 동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게 진짜 기억력(力)이다.



모든 여행 후에, 모든 사랑 후에, 모든 이별 후에. 우리에게는 기억력이 생깁니다.
지금 당신을 구원하는 기억력은 어떤 말을 걸고 있나요?

20대라면 모두가 여행 중이거나 여행 후인 요즘. 훗날, 우리는 이 젊음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바로 그 '훗날'의 입장에서 지난 여행을 소회해 보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만 20살부터 10년 동안 경험한 노르웨이 1년 체류, 카우치서핑 (프랑스,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트비아, 스웨덴) 은 물론 산티아고 도보 순례 및 리투아니아 워크 캠프 & 터키, 이태리에서의 엄마와 떠난 여행들이 건강한 30대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행 후의 기억력>을 공유하겠습니다.





작가 소개 


글 쓰고 운동하는 브랜드 마케터.

좋은 기억력과 좋은 일기장에 기대어, 과거형의 기억을 미래형의 문장으로 소환합니다.

@sehee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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