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모든 걸 다 그만둬도 괜찮은 가족이 있다면
고생했다 김부장
며칠 전에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끝까지 봤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랬겠지만, 김부장의 이야기가 아주 남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직장인의 헌신의 크기와 성과는 비례하지 않고, 정치의 성패는 서로의 친분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것쯤을 모르지 않을 만큼 나 역시 회사를 짧지 않게 다녔다.
그렇지만 주인공 김부장에게는 신이 내린 축복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하며 드라마를 봤다. 그건 바로 그 옆의 박하진이라는 존재다. 김부장은 절세 미남도, 박학다식한 달변가도 아니지만, 어떤 매력 덕분인지 박하진 같은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적어도 그런 아내가 20년 넘게 그의 옆을 떠나지 않을 만큼은 나름 빵점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배우자로서 박하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칭찬을 좀 해보자면, 상대방의 약점을 헤아리고 그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보완해줄 줄 안다는 것이다.
박하진은 자존심 강한 남편의 마음을 다룰 줄 알고, 상처 받은 마음을 보살필 줄 아는 배우자다. 심지어 생활력도 강하고 긍정적이다. 실패한 가족에 대해서는 경멸하고 비난하기 보다 안쓰러워하며 손 내밀어 주고 전폭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는 팔을 걷어 부친다. 옆에서 보기에 잘못된 점은 적당히 구슬려 웬만하면 예민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지만 때로는 단호한 신호로 각성도 준다. 정말 최고의 팀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사람이 어떻게 평범한 김부장 옆에 붙어 있을까 생각했다. 현명한 그녀가 없었다면, 체면 치레를 중시하던 김부장이 퇴사의 상처를 그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까. 박하진 같은 배우자야말로 누군가에겐 대기업 부장 자리나 서울 자가보다 갖기 어려운 것이다.
결혼이나 가족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배우 현빈이 유튜브 예능 <짠한 형 신동엽>에 나와 이런 말을 한 게 생각이 난다. 이와 완전히 같은 문장은 아니겠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가족을 앞에 세우고, 나의 존재가 점점 뒤로 가는 일 같아요. 사람들은 그것을 어른스러워지는 거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영상의 댓글창에는 여러 해석이 달렸다. 결혼은 자기다움이 줄어드는 일이라는 사람, 책임감이 커지니 자유가 사라지는 일이라는 사람.
그런데 나는, 결혼이란 바로 그 뒷자리를 나눠 앉을 수 있는 일이라서 좋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내가 중심이 아니어도 되는 삶. 굳이 내가 빛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의 삶을 대신 빛내주기도 하는 삶. 내가 응원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열렬히 뛰는 누군가를 응원만 해줘도 충분한 삶. 나 혼자 멋져지기 위해 애쓰기 보다 우리 가족들과의 행복과 안녕에 마음을 쓰면 되는 삶. 그래서 더 의미있는 삶.
가족 중에 박하진 같은 사람은 그런 팀플레이를 가능하게 한다. 김부장은 그래서 종국에 서울 자가도, 대기업 부장님 타이틀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정 내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이 전복되는 것 조차도, 이제는 더이상 김부장을 거슬리게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가 삶을 경주가 아닌 여행으로 여기기 위해서, 내게 정말 무엇이 소중한지 물어보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가족은 아닐 수 있지만, 역시 내게도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배우자의 존재가 크다. 어쩌면 때로는 그래서 더 많은 걸 버텨야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걸 그만 둬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한 모순이 존재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나는 ‘그래서 모든 걸 다 그만둬도 괜찮은’ 가족을 만들며 살고 싶다. 그런 가족이야말로 다시 말해,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니까.
참, 드라마를 보며 다시금 떠오른
회사 생활의 지침도 새겨두려 한다.
후배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말 것.
어떤 일이든 내가 다 잘 한다고도 착각하지 말 것.
리더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코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
내가 얼마나 애쓰든 남의 회사를 퇴사해야 하는 날은
언제고 반드시 온다는 것.
#서울자가에대기업다니는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