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집사 체험기
오전 10시, 사수의 집으로 건너갔다. 마스크 때문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관리실 아저씨를 맞이했고 비디오를 찍으며 실시간으로 사수에게 알려줬다.
천정을 뜯고 파이프를 손본 아저씨는 물러갔다. 젖은 뚜껑을 베란다에 말리고 빨래도 햇볕 아래 둔 다음 화초가 잘 있나 확인하고 약간의 일을 하였다. 다행히도 볕이 좋아 일미터가 넘는 뚜껑은 금방 말랐다.
창고에 있던 사다리를 질질 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5킬로는 족히 되는 뚜껑을 올렸다. 처음 올라가 보는 사다리, 처음 해보는 집수리였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끝냈다. 깔끔한 사수를 위해 어질러진 화장실도 간단하게 청소했다.
다음은 메일함 체크다. 병원에서 보험 서류를 보냈다고 하여 지하 메일실에 가서 체크했다. 아직 메일은 오지 않았다고 보고하며 맡은 일을 끝냈다.
아, 마지막으로 쫄면을 해 먹었다. 장 본지 오래되어 먹을 게 없다며 이거라도 꼭 먹고 가라는 사수를 위해 먹었다. 의외로 맛있어서 나도 쟁여야지 싶었다.
나는 사수네 옆 콘도에 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뛰어가면 3분 각인 사수네 집. 싱가포르가 작다고 해도 이렇게 작을 줄이야. 옆에 있으니 주말 저녁이면 가끔씩 소환되어 저녁을 같이 하기도 하는데 저녁은 핑계고 술자리다. 특히 사수 남편이 술을 정말 좋아해서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가져오곤 했다. 이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사수 남편이 응급실에 실려간 지 4주째다. 주말마다 병문안을 가지만 병실까지 올라간 건 지난 주가 처음이었다. 많이 호전되었지만 몇 주는 더 병원에 머무를 것 같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던 사수네는 이제 술도 고기도 끊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함께 식단 조절을 할 것이라는 사수를 보며 고기를 먹지 않는 나는 앞으로 메뉴 선정은 쉽겠다고 조금 신나 했다.
어젯밤, 사수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내일 집에 와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화장실 천정에 물이 샌다는 이유이다. 경비실을 불렀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고, 누군가 집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자연스럽게 옆에 사는 내가 떠올랐겠지.
그리하여 사수 없는 사수 집에서 반나절을 머물기로 했다. 집 열쇠를 받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사수에게 집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 느낌이 싫지 않으면서도 생소했다. 사수 덕을 많이 보고 산지라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한 점은 전혀 없었다. 집을 나서며 든 생각은 ‘한국이었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인텐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