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 넘치는 싱가포르 사람들
8월 9일은 싱가포르 국경절이었다.
작년 이맘때도 급하게 잡은 면접을 보러 싱가포르로 날아왔었다. 왜 탱크가 번화가를 지나다니는지, 거리마다 국기가 휘날리는지, 대낮에 제트기가 줄지어 하늘을 가르는지 모르는 채로 면접을 휘리릭 보고 약간의 밤문화를 즐기고 홍콩으로 돌아갔는데, 알고 보니 싱가포르의 국경일 맞이 준비가 한창이었고 특히 무슨 무슨 기념으로 더 성대하게 한다고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버거킹의 한정판 락사 버거밖에 없지만 나름 탱크 사진도 찍고 그랬었다.
이번에는 일찍이 싱가포르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보내기로 약속을 했고, 당일 저녁에 친구네 집에서 모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 함께 해준 에스더 언니의 차를 얻어 타고 길 한 번 헤매지 않은 채 무사히 도착했다. 공영방송에서는 국경절 맞이 행사가 한창이었고, JJ Lin의 노래를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삼으며 베트남 음식을 먹었다.
국경일이다 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역사로 흘러갔다.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싱가포르가 쫓겨나다시피 떨어져 나와한 국가를 이루고,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고, TV에서는 싱가포르의 다양한 인종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대충 우리는 하나다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의 국경절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은? 한국 국경절은 언제야?
언뜻 제헌절이라고 알고 있는데 찾아보니 제헌절은 조선왕조 설립일이고 개천절이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운 날이라고 한다.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대한민국이 된 날이 광복절이니 우리는 무려 3번의 국경일이 있는 것인가? 기원전 24세기로 올라가는 우리의 역사를 본다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제헌절이나 개천절과 같은 국경일이 없고 오직 신중국 설립일만 기념하는 것을 보면 나라마다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헌절을 기념하지만 공휴일은 아니라고 하니 친구들 얼굴에 물음표가 하나씩 들어섰다. 한국은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국경일이지만 공휴일은 아니라는 설명에 황당한 웃음들이 보였다. 이럴 때면 진짜 진심으로 한국 역사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며칠 지나면 홀라당 까먹고 무지렁이로 돌아온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친구들이 일어섰다. 싱가포르 버전의 국기에 대한 경례인 것 같은데,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한 줄도 아닌 아주 긴 문장을 줄줄이 외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약간 소름이 끼쳤다. 이제는 뭐라고 할 선생님도 없고 세레모니에 온 것도 아닌데 때가 되니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서서 그 긴 낭송문을 외우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의 애국심에 한 번, 교육...의 위대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 알던 친구들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너무나 생소했던 그들의 모습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심지어 국가는 말레이시아어이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줄줄 외울 수 있단다. 정말 흥미로운 국가, 독특한 문화이다.
오랜 시간 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고, 그 뒤에 잠깐의 일본 식민지를 거쳐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하였다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로 변신한 싱가포르의 사연 많은 건국 스토리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일단 그전에 나는 한국 근현대사를 제발 좀 공부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