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보이는 밤 수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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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


23도를 웃도는 적당한 온도, 밤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아무도 없는 야외 풀장에서 슬슬 준비운동을 합니다. 물은 차갑지만 하루의 스트레스를 다 벗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밤 수영을 즐긴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수영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게, 그냥 수영장을 휘적휘적 걸어 다니다가 내킬 때 눕는 게 다입니다. 배영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냥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벽에 부딪히면 방향을 틉니다. 아무도 없으니 민폐는 아니겠지만 누군가 불 꺼진 창틈으로 저를 본다면 저 인간은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할 것 같긴 합니다.


저의 밤 수영은 순전히 별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야자수 등불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별을 쫓기에는 충분합니다. 매일 보이지는 않지만 매일 하는 수영이 아니니 괜찮아요. 서울에서도 홍콩에서도 별 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여기 싱가포르에서는 별이 곧 잘 보입니다. 그만큼 삶의 여유도 보이는 걸까요? 그렇다고 시골같이 별이 쏟아지지는 않습니다. 딱 밤수영을 즐길 만큼의 별입니다.


싱가포르의 삶은 홍콩 삶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가장 다른 점은 '조용함'입니다. 눈도 귀도 마음도 모두 조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죠. 싱가포르가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라는 말은 아마 불쑥 찾아온 익숙지 않은 조용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밤이 되면 이 조용함은 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조용함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듭니다.


별이 보이는 밤, 오전도 오후도 혼자였지만 밤은 정말 오롯한 나의 것이 됩니다. 수영장을 전세 낸 사람처럼 여기저기 표류하면서 별을 즐깁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알딸딸해집니다.


내일 아침도 필요 이상으로 분주한 재택근무가 시작되겠지만 오늘 밤처럼 별이 떠준다면 그저 좋겠습니다. 그 별을 보면서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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