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제 먹은 저녁은 기억나지 않는다.
때는 2013년. 회사원 3년 차, 일도 시들 연애도 시들이라 그저 반복되는 삶을 더 격렬하게 반복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던 2013년. 제2의 고향이었던 대만에 놀러 가 연등을 날리며 찍은 사진이다. 그로부터 7년 후 나는 연등에 적었던 대로 싱가포르에 정착하였다.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연등 신은 나의 소원을 들어준 셈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함께 놀러 갔던 친구가 연등에 적은 대로 되었다면서 신기하다며 보내준 추억팔이 비디오를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싱가포르로의 이주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졸업 전 대만에서 보냈던 일 년이 좋았고, 마침 대만에 놀러 왔고 마침 연등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한 곳 찍으려던 해외 도시가 싱가포르였다. 대만이 들으면 어이없어하겠지만 나에게 대만은 젊을 때보다는 은퇴 후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전지 분량의 연등 두 면을 소원으로 가득 채워야 하는데 가족과 나의 건강을 기원하니 적을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적었다. 싱가포르로 가고 싶다고.
사실 나는 당시 비밀스럽게 한국어 교원자격 3급을 공부하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공식 자격증을 가지고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어 선생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료했던 삶을 지탱해줄 한 줄기 빛 정도로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첫 국가로는 싱가포르가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깨끗하고 여자 혼자 가도 별로 무섭지 않았으니까. 가본 건 아니지만 카더라 통신이 그랬다.
연등에 적어 날리고 보니 정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자격증을 땄고, 우여곡절 끝에 싱가포르 유명 한국어 학원에 면접을 보러 왔다. 그렇게 나는 첫 카야 토스트를 맛보았고 싱가포르를 떠나기 마지막 날 밤, 이제는 거의 매주 만나는 나의 베프인 사라를 만났다.
물론 그 학원에 붙었다면 피그말리온 효과를 지대로 경험한 인간이 되었겠지만 떨어졌다. 원장으로부터 학원에 오래 붙어있지 못할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아주 정확하게 나를 뚫어봤다고 생각한다. 훌훌 돌아다니고 싶었던 영혼이었으니까.
싱가포르 불씨는 내 안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해외취업을 준비할 때도 나의 첫 지원 국가는 싱가포르였고, 홍콩으로 이주했을 때도 내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싱가포르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싱가포르로의 이주가 결정되었을 때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놀라울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더니 진짜 가네 정도?
자기 세뇌의 효과인지, 하도 빌어서 내 소원이 이제 지겨워진 신이 소원을 들어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7년 후, 나는 싱가포르 북동쪽에서 카야 토스트를 먹으면서 더운 바람을 쐬고 있다. 유창한 한국어로 갖가지 포즈를 요구하며 사진을 찍어주었던 대만 남자아이도, 하루 종일 우리를 태우고 돌아다녔던 친절한 택시 아저씨도, 배앓이를 하던 와중에도 야무지게 먹었던 대왕 카스테라도 모두 대만이지만 나는 대만에서 싱가포르를 얻어왔다.
엉터리 예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최근 들어 나를 옥죄어 왔던 이유 모를 삶의 무게도 조금 가시는 것 같다. 싱가포르에 정착한지도 벌써 10개월 차, 코로나 때문에 5개월 넘게 집콕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좋다. 오래 두고 볼 곳이니 천천히 알아가면 될 것이다. 결국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교훈으로 끝나는 이야기지만 백투더 베이직이라고, 가장 중요한 교훈이지 않을까?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볼 예정이다. 일단 저녁으로 뭘 먹을지가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