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시는데 과연 얼마나 걸릴까요?
가장 지치고 따분하지만 바쁜 시간. 목요일 오후 3시 즈음에 도어벨이 울렸다. 기다리는 택배가 없는데 무슨 일일까? 한국에서 깜짝 선물이 온 걸까? 기대하며 받은 택배 안에는 소주가 한 병씩 정성스럽게 쌓여있었다.
그 촘촘한 포장기술에 감탄하면서 박스에 붙은 발신인을 보니, 싱가포르 친구 이름이 적혀있다. 한없이 친절한 나의 친구가 5개월 이상 계속되는 재택근무에 힘내라며 퀵을 보낸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싸서 마시는 소주가 아니다 보니 포장도 아주 정성스럽게 해줬다.
고맙다고 잘 마시겠다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생활 초창기에 질리도록 마신 기억이 아직 선명한지라 소주는 기피대상 1호이다. 특히 외국에 나와 내 돈 주고 한 병에 만원이 넘는 소주를 마셔야 한다면 주저 없이 와인을 고른다.
한국의 소주 소비량에 일조했던 그 시절,
고객이 왔으니 마시고
가장 싼 술이니 마시고
해장을 해야 하니 마시고
일이 없으니 점심에도 마시고
회를 먹으니 소독용으로 마시고
익숙한 알딸딸함 때문에 또 마시고
감기를 쫓으려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고
일이 많으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시고
술 면접도 정신력으로 통과하여 최종면접까지 올라간 나였기에 정신없이 쏟아지는 소주 또한 의지로 버텼다. 소주 3잔에 쓰러지는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뭐가 나와도 소주로 연결되는 문화에 학을 떼었고, 한국을 뜨는 그 순간 소주와 연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소주를 마셔대는 드라마 속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들의 덕분에 모든 한국인은 소주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친구는 소주 광고를 보고 내 생각이 났다는데. 단순히 내가 한국인이어서 소주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소주를 잘 마시게 생긴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비상술이 생겼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해 본다.
자두에 이슬, 딸기에 이슬 모두 처음 보는 맛이다. 워낙 관심이 없어 여기까지 진화한지도 몰랐다. 사랑스러운 친구의 마음을 떠올리며 조금씩 소비해볼 예정이지만 아직 풀지도 않은 소주 꽃은 배달된 그 상태 그대로 거실 한 켠에 방치되어 있다.
살다 살다 소주 선물을 받아본다며 웃으면서 넘겼지만 누군가의 삶 속에 내가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술 선물을 주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니 그리 싫지만은 않은 소주이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던데, 참이슬은 자몽에 이슬로 잊힐 수 있을 것인가. 다 마시면 좀 알랑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