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척 다했지만 쏘언쿨한 외노자입니다.

꿈에서도 죄송해야 했니?

by Mel

별일 없는 일요일 3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차피 자가격리 때문에 나갈 수도 없지만 외출이 가능했다고 해도 딱히 할 일은 없었을 거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라 비좁은 침대에 서로 엉겨서 꿀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별안간 소리를 냅다 질렀다.


"과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조금 더 알아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네, 네네네! 알겠습니다."


그렇다. 나의 잠꼬대다. 주말이지만 꿈속에서라도 끝내야 할 부족한 일처리가 있었나 보다. 수많은 과장님 중에 어느 분이었는지, 뭐가 부족해서 죄송했던 건지 기억도 안 나지만, 업무 시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나인지라 놀랄 것은 없었다. 놀란 것은 엄마였다.


잠꼬대를 하는 사람들이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잠꼬대를 하면서 내가 잠꼬대를 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 내용도 보통 기억이 나는 편이다. 그리고 바로 깬다. 깨어보니 엄마의 놀란 얼굴이 눈 앞에 보였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깬 엄마는 갑자기 소리를 지른 딸내미로 인해 핸드폰에 잠꼬대에 대해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별거다. 올해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했는데, 그 덕에 오밤중에 목이 다 쉬어 일어날 때도 있었다. 거의 회사와 관련된 꿈이었는데 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까? 의문이다.


혼자 살 때는 '또 잠꼬대를 했나 보다,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네.'하고 넘겼지만 가족들과 같이 있다 보니 잠꼬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이 오만 잠꼬대로 잠을 깨운다면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기대하기 어려운 퇴직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취업 비자 등 외국에서 일하면서 받는 근본적인 스트레스도 그대로이고, 2주 간격으로 나를 죄어오는 세일즈 미팅도 그대로인데, 내 몸의 민감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쓰고 나니 예민 보스로 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 선텍에 대한 무게는 가중이 되고,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는 낮아지면서 나오는 증상일까?


'잘리면 잘리지 뭐'


라고 쿨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은 쏘언쿨한 외노자였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해외살이는 쉽지 않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해진다. 그럴수록 쿨해지자고 속으로 다짐하지만 말만 쉽다. 이렇게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한국에 돌아올 수 있을까, 어디에서도 적응 못하고 떠도는 부랑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말 주머니처럼 머리 양쪽에 달고 사는 생활의 연속이다.


해외생활에 대한 콩깍지가 서서히 걷히고 현실에 부딪히고 있는 요즘, 잠시라도 들어오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건조함에 조금 고생하지만 그 외에는 괜찮은 것 같다. 대신 한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 풀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다. 그중에 가장 큼지막한 덩어리만 좀 내려놓고 돌아가고 싶다. 가져온 산더미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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