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자들이여, 작정하고 속여도 결국 알게 됩니다.

어느 중국인의 취업 실패기

by Mel

https://brunch.co.kr/@melmel/110

불과 얼마 전에 같은 팀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와 배가 아프다는 글을 썼었다. 쓰면서 뒤틀린 나의 심사에 반성하면서 이 분과 잘해보자고 다짐도 했다. 그 일환으로 싱가포르를 떠나기 하루 전, 그녀와의 커피타임을 통해 먼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물론 카톡도 몇 번 주고받았다. 하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그녀의 대담한 거짓말들이 들통나 결국 오퍼를 철회하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비자 속이기


연봉 협상을 끝낸 후 양측의 사인이 오간 바로 그 저녁이었다. HR 매니저가 비자 신청 전, MoM( Ministry of Menpower)에 연락하여 그녀의 신분을 조회하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비자가 이상했다. EP (Employment Pass)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EP가 아닌 S Pass로 재직 중이었다. 어떤 비자가 더 좋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력과 급여에 따라 종류가 나뉘다 보니 S Pass가 받는 월급과 EP가 받는 월급은 차이가 엄청 날 수 있다. 일정 수준의 학력 및 월급 수준이 되지 않으면 EP에 아예 발급조차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황당함을 금치 못했던 HR 매니저는 바로 팀장에게 콜을 했고, 늦은 시간 긴박한 미팅이 이어졌다. HR 매니저는 길이길이 날뛰었다.


" 비자를 속이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야. 절대 채용 허가할 수 없어."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비자를 속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크게 당사자가 비자 등급을 높여서 거기에 맞게 연봉을 높이는 경우와 리크루터가 커미션을 위해 당사자 모르게 비자를 높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녀의 경우 이미 Resume에 EP라고 밝혔기 때문에 빼박이었다. 서류에서 한 번, 팀장과의 인터뷰, 내 사수와의 인터뷰에서 또 한 번. HR 매니저는 늦은 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EP인지 S Pass인지 물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녀는 또 EP라고 대답했다... 참으로 대담한 그녀가 아닐 수 없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채용이 소꿉장난도 아니고 MoM에 조회만 하면 당연히 알 수 있는 부분을 굳이 이렇게 속인다고?


'이건 숨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냥 몰랐던 것일 수밖에 없다.'


이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자기가 EP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웃긴 건 사수도 여기에 동의했던 것이다. 참으로 순진했던 우리였다.


"7년 전에는 비자받기 쉬웠잖아. 그때는 EP로 들어왔지만 지금 회사에서 S Pass로 변경되었는데 까먹고 EP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명할 기회를 줘보자."


HR 매니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MoM에 추가 확인을 요청했고, 그녀가 S Pass로 들어와서 7년 내내 같은 비자로 생활을 했던 것이 밝혀졌다. 사실 애초에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여느 외국이 다 그렇겠지만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비자에 굉장히 민감하다. 비자가 끊겨 돌아가는 동료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기를 쓰고 영주권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연봉 속이기


비자를 속인 이유는 백퍼 연봉일 터, 시작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HR에서는 작정을 하고 덤볐다. 그녀에게 현재 직장의 정식 연봉 계약서 및 오퍼 레터를 요청하였다. 예상했듯이 그녀는 현재 연봉을 부풀렸었다. 그리고 그 거짓 연봉에서 우리 회사로 오며 연봉은 더 뛰었고, 그 상태로 사인을 한 것이다. 사인까지 했으니 모두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겠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HR이다.


우리 회사는 사실 본사 HR이 아시아 지역을 모두 관리를 하기 때문에 현지 백그라운드 체킹에 소홀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지사들은 이런 식으로 본사 HR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이걸 믿고 연봉을 띄우려고 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안 된 이야기지만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몇 주 전에 채용 전문 매니저가 들어왔고, 그녀는 이번 건으로 화려한 데뷔(?)를 하였다. 물론 오퍼는 즉각 취소되었다.


뛰어난 언변으로 사수와 팀장, 전무까지 이어지는 4번의 면접을 모두 통과하였고, 진실되어 보인다는 공통된 피드백을 받았던 그녀. 물론 그녀의 진실성이 모두 거짓 일리는 없겠다만 결국 마지막에 걸리고 말았고 서로 시간 낭비, 체력 낭비만 한 채 끝이 났다. 정말 작정하고 속이면 면접을 통과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좁은 바닥에서 가장 중요한 연봉에 대해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큰 타격이다. 그녀를 소개했던 리크루터도 더 이상 그녀를 맡지 않을 것이고, 그녀의 향후 구직 활동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나와의 커피 챗에서도 물어보지도 않았던 비자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영주권을 빨리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녀가 나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의뭉스러운 데가 있어서 보이는 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역시 이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사수의 씁쓸한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정당당하게, 내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걸어갈 수 있는 한국인이 되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쿨한 척 다했지만 쏘언쿨한 외노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