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격리 - 금요일

나름 괜찮은 격리생활

by Mel

싱가포르에 돌아왔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재택근무를 한국에서 하고자 회사의 허락을 얻어 한국에 돌아갔었다. 물론 한국시간에 맞추어 출근하고 싱가포르 시간에 맞게 퇴근해서 하루에 기본 두 시간은 더 일을 했지만,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먹는 가족과의 저녁과 소소한 담소가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싱가포르는 대상국의 상황에 따라 즉각적으로 제한선을 변경한다. 지난달 중반까지만 해도 자택격리가 가능했지만, 곳곳에서 치솟는 확진자로 인해 다시 호텔 격리 only로 바뀌었다. 꼼짝없이 이백만 원을 내고 호텔에 이 주간 갇혀있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포기하고 호텔 격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이참에 호캉스나 하지 뭐.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한국인이어서 서러웠던 적은 정말 드물었는데.


호캉스는커녕, 일어나면 기지개 켜고 바로 책상에 앉는다. 문고리에 걸리는 도시락을 담은 비닐봉지와 초인종 소리만 밥때를 알리고, 야근까지 하고 일어나면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잠들 시간이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다행히 좋은 호텔에 걸렸다. 호텔 지정이 가능한 홍콩이나 한국과는 달리, 싱가포르는 공항에서 무작위로 호텔을 선정한다. 이유는 잘 모른다. 다만, 재수 없으면 바퀴벌레 나오는 코딱지만한 호텔에서 묵으면서 똑같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끝내지 못한 서류를 작성하느라 40분을 늦게 나왔지만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 가장 먼저 나갔던 사람들과 같은 버스를 탔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리게 되었고 그렇게 가장 먼저 입실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이렇게 불공평한 것이다.

호텔식은 어떻냐고 찍어 보내라는 친구들이 있다. 도시락이라고 하면 엄마가 싸줬던 3단 도시락이 생각나지만 전혀 아니다. 급식보다 못한 수준에 같은 메뉴가 이틀에 걸쳐 나올 때도 있었다. 향이 강한 카레로 입안도 머리도 온통 진동을 한다. 향신료에 환장하는 나이지만 매끼 벌어지는 향신료 파티는 거절한다.

친구가 보내준 격려 과일 바구니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야경이다. 바로 앞에 페닌슐라 호텔이 있고, 사선으로는 고딕 형식의 아름다운 교회가 있다. 시간에 맞춰 종도 치고 가끔씩 북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건 아마 저 멀리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온갖 종교단체의 소리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다. 발코니는 잠겨 있지만 시야가 확보되니 답답한 느낌은 없다.

정신없는 업무로 인해 갑자기 없어진 가족도, 매번 경험하는 물갈이도, 에어컨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피부도 뒤로 물러난다. 좋지만 슬프다.


부모님께는 매일 인사를 한다. 아마 카카오톡에 가장 큰 수혜자는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공항만 가면 울어버리는 엄마도, 자꾸 언제 올 거냐고 묻던 아빠도 일주일도 안 되어 나에게 흥미를 잃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지금은 여유를 부리며 격리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며 배 째고 있지만 다음 주 이 시간에도 똑같을지는 의문이다. 두고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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