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失必有得
10년 전, 북경에서 공부할 때이다. 낙양 출신 친구의 초대로 그의 고향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중국 낙양은 불교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소림사가 있는 곳이고, 중국 최초의 절인 백마사도 있다. 중국 4대 석굴 중에 하나인 용문석굴까지, 낙양은 중국 초대 불교에 대한 모든 것이 숨 쉬는 곳이다. 때문에 관광 또한 불교 위주다. 시간이 많지 않아 백마사와 소림사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최초의 절인 것이 흥미로워 백마사를 골랐다. 이 결정은 나의 삶을 바꿨다.
일행이 백마사에 도착한 건 오후 2시를 막 넘겼을 때이다. 날씨 때문이었는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인위적인 건축물로 절을 증축하고 있던 때라 더 을씨년스러웠다. 입구를 지나니 무서운 기세로 비가 쏟아졌다. 사실 뭘 봤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친구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가 스님이 계신 것을 보고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늦은 나이에 절에 들어와 중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신선하고 새파란 눈빛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나는 단번에 매료가 되어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남았다. 쏟아지는 빗소리는 속세를 완전히 차단하였고 짙은 방언을 사용하는 스님과 짧은 중국어를 구사하는 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충분히 경험해보았다고 하였다. 반복되는 공허함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괴로워하다가 절에 들어와 평안을 얻었다고 하였다. 속세를 벗어날 계획이 없는 나는 그에게 삶의 지혜를 구하였다. 흔들리지 않고 속세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물었다. 스님은 하나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有失必有得
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다.
스님은 잃는 것이 먼저라고 하셨다. 손은 두 개뿐인데, 가득 쥔 노를 내려놓지 않고 황금 촛대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손에서 놓아야 뭔가를 쥘 수 있다. 속세인들은 이 간단한 이치를 자꾸 잊어버려서 온갖 고민을 다 짊어지게 된다. 포기하기 싫은데 갖고 싶은 것은 많고 남의 손과 내 손만 들여다보다가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얻는 게 먼저가 아니라 잃는 게 먼저라고 했다. 일단 잃고 나면 곱절로 돌아오니 집착을 버리라고 하였다. 그는 나의 엉망진창 중국어를 알아들었고, 나는 그의 방언을 이해하였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기분에 몸이 오싹했다.
세차게 내리는 빗 속에서 스님과 나는 가만히 밖을 응시하였다. 친구들은 나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였다고 한다. 한 친구가 비를 뚫고 나를 데리러 왔고 그렇게 스님을 떠나 속세로 내려왔다. 그 한 마디만은 손에서 내려놓지 말자고 한 지 10년이 흘렀다.
살아갈수록 무거운 결정들이 많아진다. 오래된 친구, 정든 직장, 나의 도시를 떠나야 하는 순간들이 기다린다.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결정들이지만 다행히 아직 손에 스님의 말을 쥐고 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는 그 손을 들여다보며 스님이라면 어떻게 말해줬을까를 생각한다. 거의 모든 답은 내려놔라지만 내려놓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내려놓고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뭔가를 또 쥐고 있는 건 확실하다.
미래의 결정들은 더욱 무거워질 테고 나의 고민도 깊어질 테지만 내 좌우명을 잃지 않는다면, 스님과의 그 날을 잊지 않는다면 적어도 사시나무처럼 흔들릴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