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김치 원정기
드디어 격리가 끝났다. 2주는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지만 생각만큼 지루했다. 격리가 끝나기 전날, 상당히 흥분한 나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호텔방을 청소했다. 그래도 할 일이 없어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어딜 가나 하나씩은 꼭 빠트리고 다니는 타고난 자선사업가인데, 이번에는 반드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겨서 나가겠다고 결심하였다. 싸 본 짐 중에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짐을 쌌고, 그렇게 두어 차례 순찰을 돌면서 마지막 점검을 했다.
토요일 11시 47분. 드디어 음성결과 문자를 받았고, 나는 로비에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사실을 알렸다. 국적을 묻더니 12시에는 나갈 수 있단다. 떠날 때가 오니 괜히 떠나기가 싫어졌다. FOX Movie에서는 '몰리와 나'를 방영하고 있었고, 나는 가방을 메고 침대에 앉은 채 30분간 영화를 시청하였다. 그리고는 날아갈 듯한 걸음으로 체크아웃을 하며 택시를 불렀다. 숨 막히는 더위와 단체 관광객에 정신이 없던 찰나, 드디어 택시가 왔고 콧노래를 부르며 택시에 올라탄 후 10분.
물건을 잘 잃어버리거나 놓고 다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정체모를 허전함이 들었다. 그때 뒤통수를 때리는 바로 그것, 김치. 딸 준다고 열심히 볶아서 싸준 김치를 그만 냉장고에 놓고 와버렸다. 나오기 5분 전까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까먹을 수 있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또 으레 그러하듯이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이상하리만치 침착해진다. 고민하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가 있잖아 김치를 그만 놓고 나와버렸는데 어쩌지? 이미 택시를 탔고 집에 거의 다 왔는데 말이야."
하지만 예상대로 엄마는 단호했다. "호텔에 전화해서 컨시어지에 맡겨달라고 해. 그거 엄마가 어떻게 볶았는지 알지? 얼른 전화하렴." 그리하여 나의 김치 원정기가 시작되었다.
격리 호텔에서 물건을 반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전화해보니 3일 후에 찾아갈 수 있단다. 어떻게 김치를 3일 동안 밖에 둔단 말인가. 냉장보관은 안된다는 단호한 그, 도대체 뭐길래 그러냐고 묻는 그에게 차마 김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국사람들은 어딜 가나 김치를 가지고 다니고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외국인들의 우스갯소리를 확인시켜주기 싫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이고, 실온 보관은 절대 불가하다고 하였더니 그는 오, 노!라고 하며 알아봐 준다며 끊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는 자포자기였다. 전화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괜히 영화에 정신이 팔렸던 내 잘못이다.
하지만 오성급 호텔은 달랐다.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내 김치를 찾았다고 더 기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감동을 함과 동시에 택시를 불렀다. 이렇게 된 바에야 엄마의 김치를 상온에 1분이라도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택시는 호텔에 나를 다시 내려주었고, 나는 컨시어지에서 김치를 낚아챈 뒤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김치는 빠르게 냉장고에 들어가 안정을 되찾았다. 막상 찾고 나니 못 찾았으면 어떠했을까 눈 앞이 아찔해진다. 엄마의 사랑을 앞으로 2주는 더 먹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