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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화장실에서 왜 남자가 나와?

건장한 남자 청소부도 있답니다.

by Mel

멜입니다.


계속되는 야근에 지치는 7월의 마지막 저녁이지만 그래도 불금이네요. '불'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일로 갔습니다. 7월 초만 하더라도 상반기 결산이다, 하반기에는 더 열심히 운동을 한다 설레발을 쳤건만 역시 회사는 여유로운 자를 그냥 넘기지 않네요.


락다운이지만 회사에 가끔 나오고 있어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법인 대표의 허락 하에 회사에 나올 수 있는데, 저의 이유는 '공사 소리'입니다. 집 앞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데 아주 드릴 파티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도 하고, 저는 직업의 특성상 하루 종일 미팅을 하는데 미팅에 그 소리가 새어 들어가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특별 케이스로 분류되어 일주일에 이틀 정도 미팅이 많을 때에는 사무실에 나가고 있습죠.


최근에 사무실을 확장 이전한지라, 온갖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찬 사무실을 들어오면 괜히 좋아요. 강가가 보이는 뷰라서 애사심에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어요. 바로 '화장실'입니다.


화장실이 걸릴게 뭐가 있냐 싶겠지만, 이 건물의 화장실 청소부는 남자예요. 그것도 건장하고 젊은 남자 청소부가 청소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지금은 소소하게 놀라는 정도예요. 제가 들어갈 때면 알아서 나가주시기는 하지만, 왜 그렇게 자주 청소를 하시는지 화장실 갈 때마다 의식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한국에서도 남자들이 화장실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들락날락하는 게 너무나 신경이 쓰이고 거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까 싶었습니다. 물론 여자 화장실은 개방된 공간에서 볼일을 보는 일은 없지만 말이에요.


나이가 좀 더 든 아저씨였다면 거부감이 없었을까요? 저에게 인사를 해주었다면 경각심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그렇다고 제가 청소부를 바꿀 수도 없는 처지에다가, 더러운 화장실보다 백 배 낫기 때문에 별다른 해결방안은 없어요. 그냥 제가 무뎌지는 것이 오히려 빠를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은 뻗어나가 사회적 인식까지 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청소부'라고 하면 '아줌마'가 저절로 따라올 정도로 성비가 갈리는 느낌인데, 여기는 그런 것 같지가 않거든요. 화장실에서 남성 청소부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회사 내부를 청소해주는 분들 중에는 남자 청소부들이 많은 편입니다. 작년까지 살았던 콘도에서도 남자 청소부들이 콘도 곳곳을 청소해주고 계셨어요.


다른 성별과 같이 화장실에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하지 않았던 저라서 아직은 많이 낯설지만, 화장실도 단지 청소를 해야 할 영역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여자 동료들이 어서 빨리 회사에 나와 저와 같이 화장실을 쓴다면 조금은 안심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이렇게 이번 주 금요일은 어울리지 않게 화장실 이야기로 포문을 엽니다. 조금 더 짜릿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락다운인지라 화장실로도 이야깃거리가 되네요. 저보다는 화려하고 즐거운 금요일 저녁 다들 되시길.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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