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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승진을 하지 못할까

두 시간의 면담. 결과는?

by Mel

멜입니다.


어제였어요. 나는 언제 승진을 할 수 있냐는 저의 물음에 2주 동안 깜깜무소식이었던 나의 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래도 올해에는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온지도 2년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른 것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2년짜리 비자가 만기 될 예정이니 갱신이 필요하다는 인사팀의 메일을 받고 비로소 체감하게 되었어요. '아, 벌써 2년이 되었구나. 그리고 나는 2년간 이 자리에 머물고 있구나.'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적지 않은 동료들이 승진을 하였더라고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다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노선은 정체일까?


처음에는 작은 씨앗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오겠지, 알아서 올려주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지냈지만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매니저가 승진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잭의 마법의 씨앗처럼 아주 무서운 속도로 불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내 성과가 더 좋고, 내가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아직 승진을 못했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바로 팀장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무개 씨는 저랑 거의 비슷하게 들어왔는데 이번에 승진 메일을 보고 조금 놀랐어요. 그럼 이제 곧 제 차례인가요."


식으로 아주 예의 바르게요. 사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게 왔다는 표정으로 앉아있었어요. 당황함이 화면을 뚫고 나왔죠. 아주 높은 확률로 저의 승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매니저입니다. 그리고 시니어 매니저로의 진급을 기다리고 있어요. 스타트업에서 VP까지 달고 나온 저였지만 매니저로 내려온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저의 경력에 딱 맞는 직급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8년을 꽉 채운 연차에 '시니어'를 달지 못한 것이 요즘 들어 계속 눈에 밟힙니다.


승진을 요구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외국에서는 내 연봉, 내 승진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쇼맨쉽'에 뛰어난 사람들이 더 잘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1의 성과를 10으로 부풀려 칭찬을 받는 사람들도 수두룩한 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소하게라도 나의 것을 쟁취해야 하지요.


결과는 올해 연말까지는 힘들다. 너는 잘하고 있지만 다른 매니저를 멘토링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시니어를 달 자격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볼 수 없다. 지금 채용하고 있는 매니저가 들어오면 3개월 동안 멘토링 하는 것을 보고 내년 초에 결정하도록 하겠다. 그것도 자리가 나면.


2년 동안 한 번도 사수에게 반문을 한 적이 없었지만 이 번에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럼 매니저가 매니저 멘토링을 하라는 말씀이세요? 아니, 시니어를 달고 멘토링을 해야지 잘하면 시니어로 올려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 승진할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자리가 나면 올려준다고요? 그 자리는 누가 만드는데요? 옆팀 아무개는 멘토링을 하고 승진했나요? 아닌 것 같은데? 팀마다 다 다른 거라면, 제가 있었던 스타트업과 다를 바가 없네요. 천명이 넘어가는 회사인데도.


너무나 심한 말을 한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못할 것도 없더라고요. 질문 폭격기로 시작한 미팅은 그렇게 2시간을 채웠습니다. 저의 비전, 커리어 목표까지 이야기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어요. 저 또한 이미 위에서 정한 결과를 바꿀 생각은 없었고요. 뭐, 더 잘하라는 소리로 듣고 넘겨야겠죠.


저를 너무나 존중해주고 저의 가치를 높이 사는, 하지만 아랫사람을 끌어올리면서 오는 부담을 지기 싫은 팀장, 힘없는 그녀의 뜻을 잘 이해하고 조금은 씁쓸해졌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인도인 팀장을 둔 동료들이 부러워졌어요. 최근에 승진한 동료들의 팀장들이 우연의 일치로 모두 인도인이었거든요. 무리해서 올리는 경우도 많았고요.


일도 재미있고 회사도 마음에 들고, 팀원들도 사랑스럽지만 그게 다는 아니네요. 다 가질 수는 없다지만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 걸까요? 다음 달로 다가온 연봉 협상도 걱정이고 한국 출장도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마음먹은 대로 된 일이라곤 별러왔던 사랑니 두 개를 엊그제 뽑은 것 밖에 없습니다. 뽑고 나서 지혈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했던 첫 미팅에서 팀장이 승진이 어렵다고 말을 하니 맥이 탁 풀리는 수밖에요. 앓던 이는 빠졌지만 앓던 고민들은 차곡차곡 쌓이는 8월입니다.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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