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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 Oct 29. 2019

번외-1. 퇴사하겠습니다.

두 번째 퇴사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회사는 리쿠르터를 통한 이직이었다.

큰 조직에 이골이 났었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회사가 더 끌렸고 작은 규모라서 그런지 한 번의 면접으로 오퍼를 받았다. 같은 무역업이었고 품목만 바뀐 터라 자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기 없지만 뒷걸음치다가 얻어걸린 회사였고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이직을 결심했다. 원래 내가 들어가려고 했던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영국계 PE펀드였고 한국지사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인턴을 했던 회사 팀장님께서 자신의 지인이 사람을 구한다면서 인터뷰 셋업을 해주셨다. 3년 넘게 왕래가 없었지만 당시 인사 전무님께서 나를 추천하셨고 감사하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Sales가 아니고 리서처였지만 금융권에 미련이 있었던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표님과 세 번 정도 만나 중국어와 영어로 면접을 보았고 연봉 협상도 비슷하게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막판에 그 포지션이 freezing 되었고 기다리라는 대표님의 말에 나는 오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었다. 드디어 이직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젠장.



꿈은 없고 돈이 다였다.



상심한 나에게 리크루터가 접근해왔다. 누가 봐도 끌리는 오퍼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여서 여자를 원한다고 했다.


베이스가 거의 두 배로 뛰었고 분기 별로 인센티브도 두둑했다. 네임밸류 따위 신경 쓸 필요가 무엇인가. 한 10년 일하면서 돈 왕창 받고 나오지 뭐.


그리고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첫 달을 빼고 월급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돈이 최고라는 나의 가치관은 바로 박살 났다. 


먼저 들어온 동기 중 하나는 수습 기간을 마치기 전에 잘렸다. 다른 한 동기는 정말 새벽 7시부터 거의 밤 2시까지 함께하였다. 나보다 가까운 곳에 살았던 그 동기네 집에서 잠을 자기도 부지기수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업무 관리 및 트레이닝 시스템. 회사를 설립한 80년대에 볼 법한 업무들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그제야 왜 나와 10년 차 과장 사이에 아무도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이 빅 오퍼를 받고 들어와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간 것이다. 그만뒀거나 잘렸거나.



선생님, 퇴사해야 할까요?



하루도 넘기지 않은 딱 채운 6개월. Resume를 위해 딱 6개월을 버티고 나왔다. 두 번째 회사의 퇴사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퇴사하기 전 날,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면서 헛구역질이 났다.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얼른 나왔다.


엉엉 울면서 걸어가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주차 경비원 아저씨를 피해 돌아간 건물에 내과가 보여 들어갔다. '뭐 마음이 외과는 아니지, 따지고 보면 안에 있잖아. 그러니까 내과지 뭐'


내과는 이미 문을 닫았고 진료가 되는 곳은 위층 한의원뿐이라길래 올라갔다. 나올 때 보니 그 한의원은 통증 재활 전문으로 사고를 당하거나 허리를 삐끗하신 어르신들이 물리 치료를 받으시러 오는 곳이었다. 어쩐지 할아버지들만 보이더라니.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하시는 한의사를 보고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선생님, 사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숨이 안 쉬어지고 눈물이 갑자기 나서 왔어요. 그냥 있다가 갈게요." 한의사는 조금 당황하더니 울고 있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회사 때문에 힘들다"라는 말을 삼십 분 동안 두서없이 지껄였다.


다친 노인 분들께 익숙한 그였지만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고,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선생님이 저라면 그만두시겠어요?" 또 한 번의 당황과 침묵. 아, 다시 생각해도 무척이나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선생님은 우문현답을 해주셨다. "숨이 안 쉬어지고 일하다가 울면서 아무 병원이나 들어올 정도면 환자분이 더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퇴사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내가 짊어져야 할 그 최종 보스의 클릭을 그에게 전가해버렸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위로에 힘입어 나는 그 길로 집에 가서 1분 만에 사직서를 쓰고 6개월 만에 발을 뻗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출근한 이사를 따라 들어가 사직서를 건넸고, 그로부터 3시간 만에 짐을 싸서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로부터 약 1년 간 악몽이 되어 따라다녔다.


두 번째 퇴사를 겪고 나니 회사를 골랐던 나의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칩거하며 큰 전지에 나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몇 번을 찢고 적고 하기를 반복, 나는 회사 선택 기준을 재정비했다.


해외 취업이 답이었다.


1. 세일즈가 맞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있어도 Goal Oriented 된 사람이다. 내가 번 액수가 회사에 기여하는 것을 볼 때 제일 짜릿하다.


2. 외국인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다. 평생을 함께해 온 한국인들 말고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로 다가오는 외국인들과 일하는 것이 가장 유쾌했다.


3. 사양 산업 말고 향후 비전이 있는 업계로 가고 싶다. 철강, 석탄 무역 모두 미래의 먹거리는 아니었고 나는 산업재 트레이딩보다 발전 가능성이 더 있는 업계를 타겟한다.


4. 스타트업으로 가고 싶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경험했지만 생각이 깨어있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비전을 공유하면서 일하고 싶다. 여러 가지 롤을 맡고 내 성장이 회사의 성장이 될 수 있는 그런 회사에 가고 싶다.



이렇게 나는 홍콩 스타트업으로 취직하여 나라를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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