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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 Nov 01. 2019

번외-2. 퇴사하겠습니다.

세 번째 회사, 특진은 고맙지만 그만둘래

새로운 환경, 새로운 회사, 새로운 친구들로 내 인생의 2막이 열렸다.


30킬로의 짐과 패기만 챙겨 온 나였기에 홍콩의 살인적인 물가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월급도 왕창 깎고 왔다. 호봉만 받던 수동적인 나에게 연봉 네고는 한 번 말은 해보는 정도였다. 스타트업이어서 월급을 많이 못준다길래 이해했다.


돈 밝히다가 크게 데인 나에게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시 시작한 커리어에 물을 주고 튼튼하게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인이 없는 한국팀에 들어갔고 팀이 쑥쑥 커나가는 것을 보며 정말 재미있게 회사를 다녔다.



내 팀이 생겼다.



내가 다닌 스타트업은 전문가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AI와 big data를 통하여 전문 지식인들의 구글을 만드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궁극적인 목표로 가는 여정에는 돈 많은 클라이언트들과 그들을 서포트할 CS가 필요했다.


돈 많은 한국 클라이언트들을 커버할 기존의 한국인들이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바람에 나를 부지런히 뽑았던 것이다.


누구는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밤도 새우고 주말도 보내는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이 회사가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좋았다.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해도 실적이 눈에 보여 좋았고, 이 달의 영업팀으로 선정될 때마다 우리 팀이 바로 회사의 성장 동력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내가 뽑은 사람들로 팀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아,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라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갔다. 스타트업답게 빠른 승진을 하였고, 가장 오래된 한국인답게 한국 마켓을 전부 담당하게 되었다. 실무는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안정된 입지와 편한 업무로 나는 나태해지고 있었다.


회사에 늦게 가는 것은 노란 경고 불과 같았고 나는 어느새 해외에 나오게 된 그 절박함을 잊은 채, 파티와 술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야!



그러다가 큰 현타가 왔다. 



현타는 어느 주말, 따분하게 해안가에 누워 몸을 태우고 있던 도중 갑자기 나를 덮쳤다. 생각해보니 이제 더 이상 내가 회사에서 클 자리가 없었다. 한국 마켓은 포화 상태였고 더 이상의 새로운 롤이나 업무가 나올 자리가 없었다.


해오던 것을 반복하는 일상이었다. 올라갈수록 잘릴 위험이 큰 것은 수많은 예들을 토대로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마침 나를 VP로 승진시킬 거란 HR Head의 메일을 받았다. 인상된 연봉, 스톡옵션 및 각종 혜택들.


Time to go. 나는 다시 종이를 가지고 집에 처박혀 생각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이제는 스타트업까지 다녀봤다. 그다음 종착지는 어디인 것인가? 다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Exit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자, 옮길 때가 되었다. 나라도 함께



- 금융이 메이저인 홍콩에서 비금융권인 내가 클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다.


- 조금 더 접근이 어려운 (비싼) Data 산업으로 가자


- 세일즈는 여전히 나의 적성과 맞는다.


- 내가 가장 잘 비빌 수 있는 곳은 역시 한국 마켓


- 나의 스타트업 경력을 존중해주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취업에 도전하게 되었고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오퍼를 받게 되었다. 이번 퇴사는 그림이 조금 이상했다. 승진을 하는 그 날에 퇴사를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회사에서 오퍼 레터를 받고 난 다음날, 아침 미팅에서 나는 사직 의사를 밝힐 예정이었다. 하필 그 날은 아침부터 여기저기에서 승진 축하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매니저는 인도에 있었다.


매니저: Hey, Congrats! You know you just got promoted to VP :) you deserve it!

나: Haha Thanks.. I really hate to say this but but I think I should tell you first.. I’m leavning this company.


왕왕왕..... 어색한 침묵과 그녀의 침 넘김이 화면을 뚫고 나왔다. 1분만 달라고 한 그녀는 마침 인도로 출장 가있던 HR Head를 데리고 와서 앉았다. Mute를 하고 둘이 5분간 열띤 토론 끝에 그녀는 말했다.


매니저: Can you just let me know what do you want from us? Why are you quiting all of of sudden?

나: Na,,, I don't want anything from you guys. It just feels like it's time to move forward.


아니 그럼 갑자기 그만둬야지 서서히 그만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정말 아무런 미련이 없이 말했고 그녀들은 모든 옵션을 꺼내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로 보내줄게. 뉴욕으로 보내줄게. 한국 지사를 세워줄게. 그럼 한 달만 쉬다가 올래? 2019년까지만 있어주면 안 돼?


혹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무한정 해외에서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3 번째라 그런지 퇴사는 더 쉬웠다. 나는 아예 사장과 간부들에게 마지막 출근 날짜까지 찍어서 그룹 메일을 돌렸다. 협상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는 선포였다.


회사 마지막 날, 홍콩에는 예고 없는 시그널 8 태풍이 덮쳤고 모두 오전에 집으로 돌아가버려 텅 빈 사무실에서 나는 오후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고 혼자 나왔다. 그렇게 나의 3번째 직장은 막을 내렸다.


홍콩과 아쉬운 안녕을 고하고 나는 짐을 몽땅 싸서 현재 재직 중인 네 번째 직장이 있는 싱가포르로 이사를 왔다.


떠날 때의 짐도 딱 30킬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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