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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 Nov 29. 2020

격동의 채식 - 1주년

채식, 일단 쭉 해보렵니다.

The game changers - Netflix


넷플릭스의 ‘the game changers’가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작년 11월, 무심코 본 이 다큐멘터리는 충격적인 시각효과를 선사하였다. 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1년간 채식주의자가 되어보기로 하였고, 입문 격인 페스코 테리안이 되었다.


페스코 테리안은 육류는 먹지 않지만 해산물과 계란, 유제품은 먹는다. 해산물의 경우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애들 (잔새우, 조개류, 작은 생선 종류) 위주로 섭취하였고 유제품은 하나 이상 겹치지 않게 식단을 짰다. 수틀리면 바로 돌아가야지 했지만 의외로 채식이 맞았나 보다. 1년간 별 고생 없이 채식을 실천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기와의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닭고기는 언제나 배탈의 주범이었고, 소고기에는 가스와 설사가 자동적으로 따라왔던 것 같다. 주위에서 먹으니 같이 먹고, 선택지가 없으니 또 먹고 하는 삶을 살아오던 중, 육식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모든 것이 간단해졌다. 그냥 안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러 논문들을 읽고, 깊게 공부해서 채식으로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 환경을 너무나 소중히 생각해서 나를 희생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받아들이고 육식에서 멀어졌다. 바로,


동물은 단백질을 스스로 생성하지 못한다.

그럼 고기의 단백질은 어디에서 올까? 바로 식물이다. 식물이 생성해내는 단백질을 몸에 축적하면서 사료에 섞여있는 각종 화학제품들, 지속 주입되는 호르몬들과 스트레스까지 함께 축적한 살덩어리가 스테이크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기'라는 중간다리를 거칠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고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비타민이 소량 있긴 하지만, 섭취하는 영양제 수를 늘리니 별 걱정이 없어졌다.


내 건강을 위하는 일이 지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시도를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고기를 평소에도 즐겼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원체 고기가 잘 받지 않는 체질에, 고기를 즐기지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한 번 해보지 뭐'가 되었다.


이제는 8개월이 훌쩍 넘어가는 재택근무도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채식요리들을 시도해볼 수 있었고 여러 실험 끝에 안정기에 접어들 수 있었다. 탄단지, 칼로리 이런 것들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관리하는 건 꿈도 못 꿀 성격이기 때문에 대강 균형 있게 먹도록 노력했다. 물론 보충제는 계속 섭취했다. 1년을 돌아보니 식단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피넛버터: 단 맛이 하나도 없는 유기농 땅콩버터를 후식 대신 퍼먹었다. 양질의 지방을 얻기 위해서.

두부: 단백질의 주 공급원이었다. 주로 두부조림으로 해 먹는다.

콩: 쌀 대신 콩. 콩도 탄수화물이 들어가지만 단백질을 조금이라도 더 섭취해보려는 일환이었다.

밀가루: 하루의 원동력은 밀가루였다. 튀김은 거의 먹지 않았지만, 면 종류는 오히려 더 많이 섭취하게 되었다.

브로콜리: 잘만 씻으면 단백질, 비타민 등 온갖 것들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거의 매일 먹는다.

콜리플라워: 콜리플라워는 잘 상하지 않고 단단한 식감이 좋아서 볶음밥으로도 먹을 수 있다.

팔라펠: 고기대신. 직접 가루를 사다가 소량의 기름으로 볶듯이 튀겨먹는다. 역시 단백질 공급원.


여기에 채소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 과일도 일주일에 세 가지 정도를 돌아가면서 먹었다. 맛도 좋고 싼 바나나는 원숭이처럼 매일 까먹어서 질렸다. 잠시 쉬고 있다. 임파서블 미트와 같은 콩고기는 먹지 않는다. 입에도 안 맞고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배가 더 불편하다.


그럼 채식의 장점은 무엇일까.

장점


1. 속이 편하다

가장 큰 장점. 그렇게 속이 편할 수 없다. 원래 고기 소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그런지, 부글거리는 속은 아예 없어졌다. 변이나 가스의 지독한 냄새도 (나의 느낌에는) 많이 가신 것 같다. 양껏 먹어도 고기보다 소화가 잘 되어 소화기능이 향상되었다.


2. 피부 트러블이 줄었다

매달 찾아오시는 그분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뾰루지들이 사라졌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피부도 투명해지고 뽀얘진 것 같았다. 정말 주관적이긴 하다. 대신 몸이 가벼워 진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몸무게가 준 것은 또 아니다.


3. 메뉴 선정의 어려움이 줄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 안에서 먹고 싶은 것을 빠르게 고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지 않는다. 재빨리 가능한 메뉴를 파악하고, 맛있게 먹는다.



단점


1. 친구들에게 미안해진다

이건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싱가포르에서 몇 없는 친구들이 하필이면 다 고기 파다. 이들은 친절하기까지 해서 매번 현지 음식들을 맛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 거의다 고기가 들어가 있어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이내 적응한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를 시킨다. 너 따로 나 따로 먹고 싶은 거 먹자 이거다. 볶은 채소와 밥만 있으면 만사 땡인 나는 사실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다만 얼마 되지 않는 내 채소를 빼앗어먹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2. 보조식품에 의존하게 된다

너무 믿는다. B12, 철분, 단백질 파우더 등을 매일 챙겨 먹고 있는데, 자꾸 불안하다. 혈액검사도 정상이오, 위 기능도 순조롭지만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고민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는 고기를 먹기를 권하나, 안 먹는다고 하여 보조제를 많이 먹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채식을 3년 정도 해왔던 나의 친구는 철분이 심각하게 부족해져 의사의 권고로 최근 육식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 봤자 콩알만큼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정도지만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는 것 같다.


3. 보상심리가 강해진다

쉽게 말해 탄수화물이 엄청 당긴다. 고기를 못 먹는다는 생각에 자꾸 이것저것을 주워 먹고 다닌다. 빵, 과자 등 탄수화물 덩어리를 입에 달고 산다. 종교의 이유로 채식을 하는 인도 친구들이 포동포동한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아마 탄수화물의 역습일 것이다. 튀긴 밀가루를 정말이지 너무 좋아한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이다. 좋은 탄수화물을 먹어야 하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나의 심리는 빵과 면 앞으로 다가간다.



1년이 지난 지금, 채식은 계속되고 있다. 몸이 어떻게 반응할까도 궁금했고 1년이 된 기념으로 며칠 전 그나마 잘 먹었던 오리고기 세 점을 먹었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소화기관은 고기를 기억하고 잘 소화해냈고, 탈 없이 끝났다. 하지만 더 먹고 싶거나 계속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채식을 더 할 수 있나 보다.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한 1년간의 채식.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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