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잘렸습니다.

짐 쌀 상자 하나씩 다 있죠?

by Mel

멜입니다.


오늘 동료가 잘렸어요. 제 앞에 앉는 동료인데, 팀도 다르고 인도 시간에 맞추어 늦게 출근하는 친구라 왕래가 많지는 않았어요. 저는 전화 미팅이 있었고 한 시간동안 귀에 땀이 나도록 미팅을 하고 끊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옆에서 사수가 눈짓으로 앞 동료를 가리키더군요.


동료는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 중이었고 전화 속의 인물은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었죠. 자꾸 사수가 의미심장하게 저를 쳐다보길래, 누구랑 이야기 중이냐고 물었더니 홍콩에 있는 헤드였어요. 사수는 전화를 뚫고 나오는 헤드의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에게 열심히 채팅을 하고 있었고 저는 조용히 일 하는 척하며 사태를 살폈습니다.


동료가 잘리는 것을 처음 본 것도 아니지만 아직 조인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의 동료가 잘리는 것을 보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어요. 당일 통보 후 짐 싸서 내보내기 스킬은 외국회사에서 많이 쓰는 스킬이죠. 퇴직금 개념도 없으니 그냥 몇 달 치 월급을 받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거예요.


홍콩 회사에 입사 후 처음보는 해고에 정말로 경악했었어요. 함께 웃고 장난치던 동료가 하루아침에 잘리고 바로 책상을 빼버리는데 아무도 동요하지 않고 마치 그 사람이 없었던 듯이 일을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나도 저 꼴이 날까, 잘리면 나는 어찌 살아야 하나 하고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했어요.


전 회사에서는 금요일 아침에 메일로, 혹은 대면 통보 후 사무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바로 잘랐어요. 쿼터 별로 타깃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쿼터가 끝나면 해고가 대거 있는 분기도 있었어요.


너무 잦은 해고는 당연히 직원들의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free rider나 타깃 근처도 못 가는 실적을 몇 달째 유지하는 세일즈라면 회사 입장에서는 비싼 돈을 들여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겠죠.


'쿨하게 지내다가 잘리면 잘리는 거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안돼! 잘릴 수 없어!!!!' 라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불안정한 나의 미래를 생각한 적도 정말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1도 걱정하지 않았던 문제였으니까요. 고용 안정성이 정말로 중요하신 분들은 해외 취업과 안 맞을 수 있어요.


사실 현재 제 자리도 전임자의 자리를 채운 것이 아니라 마켓이 성장하면서 자리를 만들어 사람을 뽑은 거라서 마켓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제가 있을 이유가 없는, 조금 많이 무서운 자리예요. 국가를 바꾸고 온 저로서는 이러한 불안정성에 조금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쿨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잘리면 잘리는 거지 뭐. 언제나 바로 박차고 나가도 후회하지 않을 듯이 일을 하자. 내가 한 것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할 일을 만들지 말자. 너무 많은 짐을 만들지 말자. 주기적으로 책상을 비우며 마음도 비우자. 해외에서 세일즈로 일하면서 배운 교훈입니다.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 잘리지 않았지만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는 자리, 세일즈. 오들오들 떨기보다는 조용히 짐 쌀 상자 하나 책상 아래 두고 쿨하게 일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치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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