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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디 Aug 23. 2019

기초반 수영일기, 열 셋

핑계

본격적인 배영 강습이 시작되며 강사님은 ‘스트림 라인’ 즉 '유선형'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선형 자세는 팔을 머리위로 쭉 뻗어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고(또는 반대로) 양팔이 고개뒤로 쭉 뻗은 자세였다. 선수들의 시합을 보면 스타트를 하고 물 속에서 잠영을 할 때의 자세가 바로 이 ‘유선형(스트림 라인)’자세라고 보면 된다. 자유형과 배영은 유선형 자세를 잘 유지하며 팔돌리기와 발차키를 하면 가장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배영 강습은 유선형 자세를 유지한 채로 누워서 팔 돌리기 연습을 하는 것을 반복했다. 어깨를 롤링하며 오른팔을 돌려 위로 쭉 뻗어 물에 닿는 순간 차렷자세로 물을 끌어 당기고, 다시 반대 쪽 어깨를 롤링하며 왼팔을 위로 쭉 뻗어 물에 닿는 순간 차렷자세로 물을 끌어 당기는 것을 반복하는 연습이었다.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던 나는 ‘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해 온 몸을 쭉 뻗은 유선형 자세로 배영 스토로크를 하며 25미터를 몇 번 돌고 나니 왼쪽 어깨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 같은 회원들이 종종 있었던 것인지, 강사님은 어깨나 팔이 아프면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다. 


통증

나는 어려서부터 어깨가 좋지 않았다. 달리기나 태권도 등의 운동은 별 무리없이 했지만 어깨에 힘이 필요한 던지기와 같은 운동은 한계가 있었다. 무리해서 친구들을 따라 몇 번의 던지기를 하면 며칠동안 어깨 통증이 심하게 올 정도로 어깨가 약했다. 언제부터 인가 어깨를 쓰는 운동을 하거나 어깨를 써야 하는 노동을 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어깨가 약해 할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니 스트림 라인을 유지하며 팔을 돌리며 어깨에 통증이 오자 나 스스로도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강사님의 힘들면 하지 말라는 말에 바로 유선형 자세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런 내게 강사님은 어떻게 말 하자 마자 그렇게 포기하냐며 노력은 좀 해 봐야 할 것 아니냐며 다시 해 보라고 했다. 몹시 불쾌 했다. 내가 뭐 하러 이 힘든 자세를 해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강사는 내가 어깨가 어려서부터 얼마나 아팠는지 알지도 못하며 어떻게 저렇게 말할수 있는지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잘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아버지는 외톨이가 되었다. 명절이면 집으로 찾아오던 수많은 사람들이 뚝 끊겼고, 친척들도 약속이나 한 듯 발길을 끊었다. 물론 나도 명절 때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고 가던 용돈을 받아 챙기던 즐거움은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명절 때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쉬는 사람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 아버지만 외톨이가 된 것이 아니었다. 나도 외톨이가 되었다. 그 많았던 후배들과 친구들의 연락이 한순간에 끊겼다. 어떤 모임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밥먹자, 술마시자, 게임하자, 당구치자 연락오던 전화가 뚝 끊겼다. 세상이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술을 사고, 밥을 사고, 받지도 못할 돈을 빌려주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형이라 친구라 부르던 이들이 돈이 없다고 하자 연락을 끊은 것이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그토록 잘 해 주었던 내 자신이 몹시 원망스러웠다. 어차피 이렇게 끊어질 것이라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외로워 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날 이었다.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다녀온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녀석은 우리집이 쫄딱 망한지 아직 모르고 있어서 연락을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물론 오랜만에 후배를 만난다는 반가운 마음이 훨씬 컸다.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냈던 녀석을 만나니 그 좋은 시절이 떠 올라 설레이기 까지 했다. 오랜만에 만나 닭갈비에 막걸리를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내가 조금 취해 연락을 끊은 후배들과 친구들을 원망하는 말을 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녀석은 내게 물었다. 


‘형이 고등학교때부터 얼마나 싸가지 없었는줄 알아요?’ 


황당했다. 아무말도 없이 녀석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녀석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돈을 좀 번다고 그래서 내가 돈을 좀 쓴다고 거드름을 피웠다는 것이었다. 거드름 정도가 아니라 매사에 내 맘대로 였다고 했다. 함부로 후배들과 친구들을 무시하고 모든 결정을 내 멋대로 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 친구들이 점점 떨어져 나갔고 어려서부터 나를 알아왔던 후배들과 친구들 몇 명이 내가 안쓰러워 곁에 있어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부도가 난 후 술에 취해 전화를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욕설을 퍼 부으며 왜 자신을 무시하냐고 소리를 질러 댔다고 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술에 취해 전화해서 욕설을 하던 내 모습이 10년만에 후배를 만나 술에 취해 이야기를 들으며 생생하게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를 찾아와 우리는 상관 없으니 언제든 힘들면 찾아 오라는 녀석들의 말에 자존심을 부려가며 얼굴을 붉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 했던 내 자신을 제대로 본 날이었고, 그렇게 아픈 데를 콕 찔려 통증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핑계

녀석과 헤어져 한참을 걸었다. 내가 피해자라며 핑계를 대며 내 잘못을 전혀 고치려 하지 않고 내 멋대로 하려던 숨기고 싶던 내 모습이 발가벗겨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사과하고 인정하지 않고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는 내 비겁함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다. 여전히 나는 비겁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사과 하지 않은 채로... 


강습을 마치고 강사님을 찾아가 스트림라인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강사님은 내게 몇가지 스트레칭 동작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노력을 하다 보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깨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수영에 도움이 되는 운동 몇 가지도 알려 주었다. 나 혼자 하는 수영을 하면서도 핑계를 대며 바로 도망가 버리려는 내 마음 자세를 이제는 조금 바꿔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만에 한국에 들어와 나에게 일침을 날린 후배 덕에 정신을 차린 것일까? 아니면 지난 10년의 어두운 시간이 그래도 어둡기만 하지 않고 나를 철들게 했던 것일까? 힘든 일 앞에 본능처럼 핑계들 대던 내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유선형 자세를 더 잘 유지할 수 있는 노력을 해 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 그리고 그런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어깨의 유연성이 개선되고,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근력이 생겨나면 내가 그토록 상처를 주었던 녀석들에게 사과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밤 마다 쌍둥이들과 함께 거실에 엎드려 유선형 자세를 만들며 같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녀석들도 그런 나를 따라 하며 아빠 팔을 더 뻗어봐, 어깨에 힘을 빼봐... 하며 내 어깨도 주무르고 팔도 주물러 준다. 역시... 연습 하길 잘 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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