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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열정은 이용당했고, 나는 결국 나를 잃었다.

(2화) 하고 싶은 일을 향한 여정

by 멜로그

그래서 결국 급하게 만둣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손목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직장인의 8시간보다 적은 5시간을 일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고돼서 집에 돌아오면 체력이 바닥났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무너졌다. 주변에서 이미 음악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텃새가 날 점점 더 갉아먹었다.


[포기하지 않은 한 가지]

하지만, 한 가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음원 제작 지원 사업" 에 선정되는 것.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눈물을 삼키며 창작에 몰두했다. 보컬 실력을 다듬고, 지원할 음원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작업했다.

그러나,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마음에 드는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째 한 소절씩 쥐어짜며 고민했다. 그날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겉옷을 걸치고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학교에서 가장 높은 곳인 법대 건물을 향해 걸으며 한쪽 귀로 가사가 없는 노래를 들었다. 작곡을 위해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면서. 뻥 뚫린 법대 로비 계단에 걸터앉아 넓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달이 참 밝았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쉼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이번 해만큼은 나를 위해 살아보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왜 코로나가 터져서 내 모든 계획을 무너뜨리는 걸까. 아르바이트가 힘들어도, 집에 돌아와 노래를 해야지 왜 힘을 내지 못하는 걸까. 자책과 원망이 뒤섞여 서럽게 울다가, 문득 밝은 달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거다."


가족이나 친구가 힘들어하면 "괜찮아"라고 위로하면서, 정작 나는 왜 나에게 이토록 모질게 구는 걸까.

다른 사람을 위로하듯, 이제는 나도 나를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는 곡을 만들기로 했다.


["위로" - 려경 / 가사 중]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해 잠 못 이루고

글로 가득 찬 몸을 이끌어

다시 집을 나선다


어둠이 내린 밤

사람 하나 없는 골목길

떠 있는 풍선처럼

바람에 그저 흔들거리네


잘하고 있을까

왜 힘이 안 날까

답답한 맘에 자꾸

눈물이 차올라


너를 위로하던 나를 떠올리면

나를 위로하는 나는 어디에

어두운 밤 빛나는 저 달을

마주한 너도 빛나고 있잖아


너를 위로하던 나를 떠올리며

나를 위로하는 나는 여기에

잘하고 있어 기특하구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노래를 완성하고, 가녹음을 했다. 오디션 당일, 심사위원들의 눈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결과는 합격."


처음 도전한 음원 지원 사업에서, 음악을 해온 사람들과 경쟁해 당당히 합격했다.


[진짜 음악 작업의 시작]

강압적인 권유로 집게가 아닌 무거운 튀김 채를 통째로 들고 만두를 건지느라 손목이 망가졌다. 다음 알바생이 들어오고 나서야 그 만둣집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화장실 청소부터 설거지, 서빙, 캐셔까지 하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3살에 처음 냈던 음원은 이미 나와 있는 inst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 동아리실에서 녹음했던 곡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inst까지 새롭게 만드는, 말 그대로 "진짜 음악 작업" 이었다.


"인트로에서 바이올린 스트링 넣고, 중간엔 기타 소리를 더 다이나믹하게 살려주세요."


편곡가님과 매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0.01초의 딜레이, 미스난 코드, 소리의 조절까지 하나하나 체크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음악 작업"을 경험하며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인생 첫 보컬레슨]

음원 작업을 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보컬 레슨을 받았다. 소개를 받아 유명 가수에게 배우기로 했지만 너무 비싸서, 대신 그 가수의 코러스로 활동하는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다.

1시간에 무려 10만 원.


하지만 더 실력을 키우고 싶었기에, 나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세 달간 서울-청주를 왕복하며 레슨을 받았다.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수업 전 후 사담이 많았다. 실제 수업 시간은 30-40분정도. '10만원인데 수업을 이렇게 한다고?' 하지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이었고, 괜히 말을 꺼내 심기를 끼쳐드리면 나에게 피해가 올 것 같아서. 그리고 지인의 추천으로 받은거니까 그냥 믿어봤다.


[최고의 기회인줄 알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보컬 선생님이 비밀리에 제안을 하나 하셨다.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학교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호원대 실용음악과 학생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할 거야. 보컬로 너를 추천하고 싶어."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망설였지만, 정말 좋은 기회라는 말에 믿고 승낙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곳은 이상했다.

"뭘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시키면 그냥 하면 되지."

세션별 교수님, 학생들을 포함하며 20명 조금 안되는 인원이 늘 강압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수업을 했다.

그리고 나는, 비전공자니까 늘 배우겠다는 자세로 있다보니 무시당하거나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버텼다. 나는 너무나 간절하니까. 무료로 노래를 배우고, 유명한 밴드로 성공하게 해준다니까.


내가 청주에 있어서, 합류 혜택으로 약속했던 보컬 개인 레슨을 받을 시간이 없으니 서울로 올라오라고 권유받았다. 돈이 없으니까, 친구 집에서 잠깐 얹혀 살았다. 그러나 4개월 동안 개인 레슨을 받은 적은 딱 1번. 늘 집에서 대기하라고 했고, 서울까지 왔지만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점점 그들의 말에 세뇌되었고, 스스로를 한없이 부족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이 조직이 이상한 것 같지만, 지인을 통해 같이 들어온 곳이니까 믿었다.


그리고 12월, 나는 집단의 대표가 운영하는 단 칸방의 작업실에서 살기 위해 서울에서 고양으로 또 한 번 이사를 갔다. 막연한 두려움과 서러움이 몰려왔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일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글쓰기와 가사 쓰기의 노래로, 나를 되찾다]

이 활동과 함께 나는 매주 토요일, 꿈다락문화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컬 강사로 일했다. 청주에서 수업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으나 돌아갈 생각에 다시 마음이 무거웠다.


"언니, 내가 지금까지 봐온 언니가 아닌 것 같아."


매일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동생이 자주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수업이 끝난 후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를 냈다.


우울함, 울컥함, 후회, 자책, 답답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나의 머릿속을 A4 용지 11장에 쏟아냈다.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노래를 만들 듯 비트를 들으며 가사를 쓰듯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나 자신으로 성공하고 싶었지, 이 집단을 통해 가수로 성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잘 되더라도, 후회가 들지 않을 이유를 찾았다. 만두겠다고 했을 때, '이번에 3억을 투자받아서 성공할 것 같은데'라며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스운 건, 내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단이 해산되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12월 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청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이 지하 속에 갇힌 듯했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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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하고싶은일 #음악 #도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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