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31개의 프로젝트 끝에 선택한 '강제 절전모드'
실력을 증명하자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 잘하는 신입'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편견 없이 저를 바라봐 주는 동료들이 생겼습니다. 정치를 좋아하던 상사들은 하나둘 퇴사했고, 기획부는 부서가 커지며 10명의 새로운 팀원들이 들어왔습니다. 비록 사원 직급이었지만 팀장 공석 상황에서 주간 회의를 주관하고 의견을 취합하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겪었던 부조리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로 온 직원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내밀며, 저만의 프로젝트 레퍼런스를 쌓아갔습니다.
말뿐인 인정과 맞바꾼 나의 '임계치'
잘한다는 말뿐인 인정 뒤에는 추가 업무라는 이름의 과부하가 뒤따랐습니다. 프로젝트 일정, 고객사 응대, 인력 조율까지... 기획 PL을 넘어 프로젝트 전체를 리딩하는 제 머릿속은 온통 회사 생각뿐이었습니다. 잘못도 없는 일에 고객사의 기분에 따라 '샤우팅'을 당하고, 가족 여행 중에도 전화 한 통에 회사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명절 연휴에도 수액을 맞고 위염으로 구토를 반복하며 프로젝트를 완수해냈습니다.
그렇게 5년간 31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3년 차, 1억 6천만 원 규모의 사업을 최종 마무리하던 날 새벽. 거울 속에는 다 망가진 제가 있었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매일 호소해도 해결해 주지 않는 회사,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들. 문득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온전한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이 정해놓은 '취업과 근속'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더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퇴사'라는 선택지를 꺼냈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퇴사 의사를 밝히자 그제야 회사는 "며칠 쉬고 오라"며 저를 붙잡았습니다. 당장 퇴사를 해도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저는, 완전한 회복 없이 다시 1년, 또 1년을 버텼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경력을 쌓아 어느덧 5년이 되었습니다.
6년 차를 앞둔 지난 겨울, 다시 한번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이제는 정말 벗어나야 한다.' 회사는 사람을 더 가혹하게 몰아붙였고, 이 환경에서는 더 이상의 성장도, 사람으로서의 대우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방 기업 연봉의 한계와 그에 반비례하는 노동 강도 속에서, 업무 중에도 울컥하는 증상을 매년 겪으며 제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습니다. 5년이라는 꽉 채운 경력을 눈앞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년 연속 근무자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 '한 달 안식월 휴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갈아넣으며 바로 다음 스텝으로 도망치듯 가는 대신, 인생을 길게 보기로 했습니다. 네, 그렇게 저는 5월, 퇴사 대신 '한 달간의 강제 절전모드'를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떤 모드를 실행 중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