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당하던 신입 기획자가 5년을 버텨낸 결과#1

: 사수 없는 지옥에서 '나'라는 시스템을 지켜내기까지

by 멜로그

"조만간 일 안 하고 분위기 흐리는 사람들 정리할 예정이니, 너는 지켜보며 조금만 버텨라."


26살, 정규직으로 첫발을 내디딘 입사 3일 차에 상사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그저 저를 믿어주는 상사의 은밀한 조언이라 믿었습니다.

체계도 사수도 없는 살얼음판 같은 환경, 기존 세력의 텃세로 6개월간 인사를 무시당하는 모멸감 속에서도 저는 다짐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 해도 내 일에만 집중해서 잘 해내 보자'고 말이죠.


비전공자 신입의 무모하지만 정직한 정공법

비전공자인 제가 홀로 부딪히며 업계를 알아가는 비용보다, 최저시급 수준의 월급일지언정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사 3개월 차에 4천만 원 규모의 프로젝트 리딩을 덜컥 맡게 된 순간, 프로젝트의 시작점조차 알려주는 이가 없어 막막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고객사인 박사님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기획자의 첫 번째 단추인 '요구사항 정의'라는 단계더군요. 그렇게 저는 온몸으로 부딪히며 기획의 세계를 익혀 나갔습니다.


무시를 실력으로 치환하는 과정

상사들의 업무 지원과 산더미 같은 유지보수 요청에 퇴근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업무가 고되어도 이 또한 나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 믿으며 버텼지만, 특정 무리의 '인사 무시'는 여전했습니다. 퇴근길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나에게 이리 냉대할까?' 자책하며 스스로를 옥죄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습니다. '내가 더 밝게 인사하고, 개발·디자인팀을 위해 더 세심하게 업무를 준비하자.'


그렇게 3개월을 반복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상사의 지시에 열심히 따르는 신입이 싫었을 뿐이라는 것을요. "여긴 학교가 아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제 실력을 키우는 것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기로 했습니다.


기획자의 근육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받는 무형의 무시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더 밀어붙였습니다. 화면 설계를 넘어 개발·디자인팀과의 협업 조율, 고객사 응대까지 도맡으며 저의 영역은 어느덧 PM으로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신입이 신입 교육 자료를 만들고, 혼자 미팅에 들어가 프로젝트를 성사해 냈습니다. 누구 하나 가르쳐준 적 없었지만, 고통 속에서 갈고 닦은 기획자의 근육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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