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며칠 전 낮에 아빠께서 전화를 하셨다.
노트북 모니터 글씨가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데 크게 키우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께서 내 글을 엄마께 보여주고 싶은데, 엄마가 글씨가 작아서 눈이 침침하실 것 같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빠 무슨 글 어떤 글요?라고 물어봤는데,
내 브런치 글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엄마에 관해 썼던 글들을 보시곤 엄마께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어쩐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 한동안 글을 글을 쓰지 않았을 때 아빠께서 왜 요즘 글을 안 쓰냐고 하셨는데 그땐 무슨 얘기 신지 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출판사 제의를 받고 부모님께 얘기하고, 네이버에 '상냥한 주디'를 검색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아빠께서 잊지 않고 검색 후 브런치까지 보고 계셨던 거다.
에고~ 이럼 가족들 이야기들을 쓰기가 좀 민망하게 됐는데 그래도 아빠에 대한 글감들은 많기에 용기 내보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아빠는 정말 다정하신 분이시기도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출근길마다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그게 언니의 초등학교 때부터 동생의 고등학교 때까지였으니 그 많은 시간 아빠는 우리와 함께하며 추억을 쌓으셨다.
특히 내가 사춘기였던 중학교 때는 아침마다 엄마와 싸우며 울면서 학교 가는 날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침에 나의 기분을 풀어주며 달래주는 건 아빠였다.
가끔은 엄마 몰래 용돈을 주기도, 엄마 몰래 학용품을 사주며 딸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아빠를 생각할 때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빠께선 나에게 우리 둘 만 데이트를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비밀이라며, 우리 둘 만의 비밀이라고 하셨다.
처음 데리고 간 장소는 볼링장였다.
그 당시 아빠의 취미가 볼링이기도 했고, 가족들과 가끔씩 갔던 곳이었다.
아빠와 단 둘이 볼링을 치고, 아마도 점수 내기 볼링을 했던 것 같다.
아빠께서는 내가 무엇을 하던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며, 아낌없이 표현해주셨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우리 동네의 고급 레스토랑였다.
가족의 기념일에만 가끔씩 데리고 갔던 곳인데, 아빠와 단둘이 가서 정식 세트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언니와 나에게 우리 공주들이라고 불러주시곤 했는데, 정말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데이트답게 칼질을 하며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아빠와의 데이트를 아빠가 우리 가족 중 나를 제일 좋아해서 나만 데리고 갔다고 생각하며 자랐었는데, 나중에 커서 언니와 남동생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을 알게 되고 아빠께 왜 그렇게 다 우리끼리 비밀이라고 했냐고 물어봤는데, 아빠께서는 아빠의 아빠께서 어릴 적 9남매를 키우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한 명씩 손잡고 나가서 데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아빠도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그런 추억을 만들어줘야지 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때 아빠와의 추억이 좋아서 종종 두 아이 중 한 아이만 데리고 데이트를 간다.
그리고 둘만의 추억을 쌓고 그날은 그 아이에게 집중한다.
조만간 나의 열혈독자이신 아빠께 데이트 신청을 해봐야겠다.
#책과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