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동아리에서 주인공 역 오디션을 볼 때 나를 가장 당황하게 한 질문이었다.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하는 모습만 상상했지 앙상블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탓이었다. 어떤 역할이든 노래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모범 답안을 말하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인공 뒤에 서서 솔로곡 하나 없이 대사 몇 마디가 끝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였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 앙상블이 되어도 괜찮은 사람은 없을 거다.
이런 내 생각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 건 <모차르트>라는 뮤지컬의 커튼콜을 보고 난 뒤였다. 보통은 공연이 끝나면 무대에 주연 배우들이 한 명씩 나와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대표 넘버(노래)를 짧게 부른다. 앙상블은 그 뒤에서 군무를 추거나 코러스를 한다. 열댓 명의 앙상블은 주연 배우들처럼 한 명 한 명 인사하는 대신 손을 잡고 한 번에 인사를 하고 마무리한다.
그런데 뮤지컬 <모차르트>의 커튼콜은 달랐다. 주연 배우들이 모차르트의 대표 넘버 ‘황금별’을 부르고 난 뒤 무대 뒤쪽으로 걸어갔다. 열 명의 앙상블이 무대 앞쪽으로 나와 각자 한 소절씩 노래를 불렀다. 주연배우들이 뒤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적어도 노래를 나눠 부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앙상블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앙상블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이들이란 생각을 했다. 앙상블 없이 배우 대여섯만 무대를 채운다면 무대는 턱없이 비어 보일 것이다. 모든 배우가 나와 부르는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웅장함도 덜할 것이다. 감동적인 무대를 만든 건 소수의 주연 배우들만이 아니었다. 앙상블들도 있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만 대다수는 우리 사회에서 ‘앙상블’에 머무른다. 누군가를 직장 상사로 두고 있는 근로자이며 TV에 유명 강사가 나와 하는 강연을 듣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청자이다. 투표권을 행사해 내 의견을 정책에 반영해줄 대표를 뽑기도 한다. 이름 석 자가 세상에 알려지진 못해도 이 세상이 굴러가는 데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앙상블’의 중요성이 결코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민주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리더만 잘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19처럼 특수한 상황에는 앙상블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앙상블이 한 목소리로 함께 노래하고 움직여야 재난도 이겨낼 수 있다. 아무리 정부가 좋은 방역대책을 내놓아도 국민이 따르지 않는다면 정책의 효과는 떨어진다. 앙상블 배우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무대는 엉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또 소중한 줄 아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걸 <모차르트> 커튼콜을 보고 알게 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인 박은태 배우가 무대 인사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앙상블들, 당신들이 최고입니다.” 뮤지컬 공연 하나당 어마어마한 돈을 받는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공을 돌리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다. 그러나 박은태 배우는 매번 앙상블에게 가장 먼저 고마움을 표했다. 모차르트 공연 커튼콜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모든 조연, 앙상블들과 합이 맞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가 확 떨어지는 어려운 극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뒤 그는 뒤돌아서서 배우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앙상블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몇 달 뒤 아마추어 뮤지컬 앙상블 배우로 무대에 서면서 나도 그 소중함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대사는 없지만 다양한 표정과 춤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무대를 꽉 채우고 있는 앙상블인 내가, 이 사회에서도 수많은 앙상블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