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멜트 Aug 03. 2022

3. 무기질로 만들어진 기억

K는 짐수레를 물가에 세운다.

짐수레에 실린 짐을 헤집고 마치 창자를 뽑듯 호스 한 줄을 쑥 뽑아낸다. 호스 끝을 물속에 담그고 호스가 연결된 펌프 전원을 켠다. 펌프가 꿀럭거리며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K는 고글과 장갑을 벗는다.

수레 한편에 나있는 밸브를 돌리자 물이 쪼르르 흘러나온다.

K는 고글 모양으로 엉겨 붙은 땀과 모래를 씻어낸다.

양손을 모아 물을 받아 마신다.

들이키기 전 물을 머금고 맛과 냄새를 확인한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 들이킨 뒤 수통에 물을 채워 넣는다.

밸브를 잠그고 수통을 뒤춤에 걸어둔다.

K는 그제야 기지개를 켠다.

모든 동작이 매끄럽고 기민하게 이어져 마치 어떤 종교의 의식처럼 보인다.


‘오늘은 건질 게 있나’


K는 물가에 다가가 앉아 손가락을 담근다.

그의 손가락을 중심으로 동심원이 퍼져나간다.

동심원을 따라 진동하는 파편들이 물고기 떼처럼 튀어 오른다.

호수가 끝까지 멀어지던 파편들은 곧 한 곳으로 모여든다.


‘저기군’


K는 수레 옆면에 붙어있는 캐리어를 연다.

원통형의 파이프들을 조립해 길이를 늘리고 끝에 도장같이 생긴 어떤 기계장치를 돌려 끼운다.

자신의 키만 해진 파이프를 들고 호수 반대편, 파편들이 멈춘 곳으로 향한다.

반대편에 도착한 K의 발치에 수면이 파르르 떨린다.

K는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지잉-‘ 하며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듯한 소리가 난다.

L는 팔을 쭉 뻗어 장치의 평평한 면을 떨리는 수면에 수직으로 집어넣는다.

절반쯤 들어간 파이프가 바닥에 닿는다.

그의 발 주변 모래들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K는 긴장한 표정으로 스위치를 다시 한번 누른다.

진동은 더 커져 주변에 모래먼지가 피어오른다.

곧 K의 손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거 월척인데?’


K는 고글을 내려쓰고는 온 힘을 다해 파이프를 잡아당긴다.

물속에 잠긴 모래 더미가 부풀어 오르고 곧 모래째로 파이프 끝에 끌려 나온다.

뭍으로 나오자 모래가 쏟아져 흐른다.

모래에 감춰져 있던 온갖 고철과 철가루들이 파이프 끝에 달라붙어있다.

K는 손잡이에 버튼을 눌러 장치의 전원을 끈다.

진동하던 수면과 모래들이 잠잠해지고 고철더미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어디 보자… 건질만한 게 있나?’


K는 고물 더미를 신중히 뒤적거린다.

고철더미에 있던 기어 부속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크, 드디어 하나 건졌고.’


계속해서 고철더미를 뒤적이던 K의 손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닿는다.


‘뭐지, 고무? 실리콘? 제발… 요즘 구하기 힘들단 말이야.’


그가 쌓여있던 무더기를 옆으로 밀어 던지자 그 물체가 온전히 드러난다.

그건 상처하나 없는 남자의 형상이었다.


‘… 이거 누가 봐도 유기질이네.’


매거진의 이전글 2. 신기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