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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트 May 10. 2023

위대한 감독이 말하는 이야기의 힘.

파벨만스 by 스티븐 스필버그

먼저, 스필버그의 전기영화라는 것만으로도 기대되는 마음으로 예매를 했다.

우선 영화의 완성도는 더할나위없었다.

최근 개봉영화 (영화 뿐만 아니라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를 볼때마다 항상 아쉽거나 불만인 부분이 꼭 있었다. 

이 장면은 왜 있지? 왜 이렇게 만들었지? 하는 의문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영화가 빨리 끝나서 아쉬운 감정이 가장 컸다.


놀라운 점은 영화를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너무 잘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이 영화를 하게된, 또 그것을 할때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순간들이 나열된 영화인데

물론 아름답게 표현되었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순간들도 그대로 묘사한다.

아마도 그에게있어 영화란 일종의 치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고통스럽고 어두운 순간이야말로 빛나는 순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영화상영의 원리 자체가 그렇다. 어두운 곳에서 필름에 빛을 쏘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이다.


이런 스필버그 감독의 철학에 공감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엄마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차마 그녀가 시한부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혹은 기적적으로 회복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끝까지 놓치 않았을지 모른다.)

결국 엄마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 후로 몇 년간 우리는 방황했고 제대로 아물지 못한 상처는 흉으로 남았다.

그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치료할 수 있었던 건 고등학생 시절 가사와 글을 쓰면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과거는 없다. 그저 우리 머릿속에 왜곡되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 기록을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재조립 한다.

어떤 순간은 아프게, 어떤 순간은 빛나게 의도적으로 순서를 뒤섞은 뒤 

그때의 우리를 닮은 배우들에게 대사와 감정을 부여한다.

그렇게 글로서 직조된 기억은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묘사한 창작과정이 너무 차갑고 공업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차갑게 바라보고 나서야 진정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 밖으로 나간 순간 그 경험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다.

나와 하나였던 것이 분리되는 이 느낌을 영감이나 순수를 잃는 것으로 여긴 적도 있다.

실제로 그 경험이 주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 과거는 내게 어떠한 고통도 주지 못했다. 


창작이 숭고한 이유는 그 과정은 개인을, 그 결과물은 타인을 치유하기 때문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이룩한 업적 뿐 아니라

그토록 위대한 이야기들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통해) 가장 많은 이들에게 나누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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