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기가 싫다.

삶을 갉아먹는 우울증

by 메메


옛날부터 내가 많이 하던 생각이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왜인지 살기가 싫다.


남들은 다들 자신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난 사실 내 미래를 그렇게 궁금해해본 적 없다.


나에게 오늘이란 눈이 떠지기에 살아가는 하루일 뿐.


당장 내일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타고난 성향은 어쩌면 삶의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영역이 아닐까 싶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인 사람이 성공하기 쉬운 조건을 타고났듯,


반면 나의 성향은 목표의 수준도 낮고 쉽게 포기한다.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국에서 나만 이렇게 위기감이 없는 건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특히 노력의 결실을 맺어 나와는 많이 달라진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애써 내뱉는 축하의 말 뒤에 대비되는 나의 초라함에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난 몇 번이고 나의 습관적 우울성과 무기력함을 의지로 고쳐보고자 했다.


그러나 평생을 반복적인 우울에 시달려온 나는 이미 만성이 되었나 보다.


마음을 다잡아도 다시 힘내는 것은 하루 이틀뿐. 그 후 다시 또 무기력함이 되찾아온다.




이런 나약한 내가 어느새 결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직장 생활에 뛰어드니


그것은 그것대로 녹록 않다.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지위와, 문과 출신이라는 암담한 미래까지.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은 나를 속인다.


정확히는 그 세상은 사실 나다. 나는 나를 속인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처럼 희망을 주고 또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나.


그런 내가 어느새 내 세상이 되었다.




사실 비교하지 않으면 좌절할 것이 하나 없는데.


난 내가 쉴 침대가 있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이런 습관적 우울감의 원인을 찾자면, 유전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옛날부터 주기적으로 우울증을 겪었다.


그래서 난 내 아버지가 싫었다. 매일 집안에 박혀 우울감에 젖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다른 가족까지 힘들게 만드는 그가 정말 미웠다.


돌이켜보니 지금 나의 증상과 어릴 적 아버지의 증상이 참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에서야 그를 조금 이해하게 된다.




더 이상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나의 병이 치료되지 않을 것 같아,


몇 번이고 생각하기만 했던 정신과 진료를 예약했다.


신기하게 예약만 했을 뿐인데 요즘에는 스스로 일상의 감사함과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아졌지만 아직까지 내 주변에서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더 꺼려졌던 정신과 진료를 용기 내어 받아보려 한다.


알약 하나로 사람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는 그 자체를 나 스스로를 구해 주기 위한 첫걸음으로 여기기로 했다.


가장 젊은 날의 나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위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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