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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Sep 27. 2022

내 공간은 내가 확보하기.


탁구에서 스텝은 기본이다. 뭐든 기본이 중요한 법. 기초를 단단히 세워야 그 위에 기술을 쌓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를 세우는 과정은 언제나 지루하다. 


“탁구에선 스텝이 절반 이상이야” 반복되는 남편의 잔소리가 매섭다. 팔만 뻗었다 오므렸다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란다. 


스윙에서 중요한 건 공과 나의 거리인데 이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자연스럽고 시원하게 스윙을 할 수 있다. 이 거리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해답은 스텝에 있다. 스텝을 옮겨 내 공간을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스윙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공간이다. 나비처럼 가벼운 스텝으로 공과 나 사이의 거리, 즉 적당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탁구에서 공과 라켓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큼 육아에서 아이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또한 언제나 중요하다. 서로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서로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거리,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며 존중할 수 있는 거리. 이 적당한 거리가 아이와 나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아이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탁구에서 공과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나의 발을 옮겨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육아에서도 양육자 스스로 나의 공간을 만들 때 자연스럽게 아이와의 거리를 만들 수 있다. 이건 실재적인 공간을 뜻하기도, 심리적인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아이의 공부방을 위해 나의 서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방이어도 좋고 책상 하나여도 좋다. 아이 책상, 나의 책상 두 개를 같이 붙여보자. 아이와 마주 보고, 혹은 나란히 앉아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상상보다 더 근사할 것이다.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 그곳이 어디든, 어떤 형태로든 나의 공간을 만든다.


 집에 엄마의 공간이 있다는 건 아이에게 타인, 특별히 엄마의 공간을 존중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족 구성원 각자의 공간이 있음으로( 작은 책상 하나, 책장의 한 줄만 있어도 된다.) 아이는 각 구성원의 공간을, 더불어 구성원 개개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법을 자연스레 몸으로 습득한다. 또한 가족은 서로를 위해 (특히 부모는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서서 함께 자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더불어 내 공간을 만드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엄마라는 역할은 마음을 조각조각 나눠 써야 하는 일이라 가끔은 ‘나’라는 조각을 놓쳐 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면 조각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라는 조각을 다시 찾아 손에 넣게 된다. 


그 공간에서 나는 위로받고 성장하며 힘을 비축한다. 이렇게 비축한 힘으로 나를 향해 던지는 공들을 넉넉하고 여유롭게 받아쳐낼 수 있다. 이 공간은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다. 공을 쳐내는 라켓이 나의 손에 들려 있는 이상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시원하게 스윙을 할 수 없다면, 라켓이 공과 아주 가까이 놓여 있다면. 내 팔의 움직임이 어색하다면 발을 옮겨 내 공간을 만들자. 


아이에게 말 한마디 편히 나누지 못하는 속 좁은 관계가 되어 버렸다면, 아이와 나의 거리가 바늘과 실만큼이나 가까워져 버렸다면, 아이를 향한 나의 말과 행동이 어색하다면 마음을 옮기고 몸을 움직여 내 공간을 만들자. 


내 공간을 만들어 공과 라켓의 거리를 확보한다면 공(아이)만 바라보다 라켓과 발이 꼬이는 대참사(아이만 바라보다 내 몸 하나도 어찌하지 못하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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