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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Oct 03. 2022

서비스는 서비스(service)다.

서비스는 랠리가 시작되기 전에 초구, 즉 첫 번째 공을 말한다. 서비스를 어떤 공으로 넣는지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결정된다. 서브에도 다양한 규칙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규칙들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비스를 줄 수 있다.


탁구를 배울 때 가장 의아했던 점은 왜 서비스를 가장 먼저 배우지 않는가 였다. 서비스를 넣으면서 랠리가 시작되니 서비스를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서비스 먼저 배우지 않는 걸까. 내가 서비스를 배우기 시작한 건 탁구를 배우고 한참 지나서였다. 스텝과 스윙이 몸에 익숙해질 무렵, 이제 공을 계획대로 넘길 수 있게 되고 나에게 오는 공을 받아쳐낼 수 있을 그쯤, 서비스를 배웠다. 그럼 서비스는 쉬웠겠다 말하신다면 “아이고, 제가 오만했네요” 라며 겸손하게 머리 숙일 수밖에.


규칙에 맞춰 서비스를 넣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다. 분명 내 몸에 붙어있는 두 손 중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오른손으로 그 공을 치는데 왜 헛스윙을 하고 있는 거지? 기껏 공이 맞았다 하면 상대편이 마음 편히 공격할 수 있게 높게 띄워 넘기기 일 수였다. 이렇게 넘긴 서비스는 다시 공격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였다. 내 서비스가 공격으로 돌아올 무렵. 아, 서비스에서 결판 지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기본이 되는 서비스보다 상대가 쳐내기 힘든 공, 즉 공에 회전을 넣어 보내는 서비스와 상대가 칠 수 없도록 낮게 가는 공을 넣는 서비스에만 집착하기 시작했다. 


상상해보라. 이제 겨우 왼손이 던진 공을 오른손이 치기 시작한 사람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공을 후려치고자 라켓과 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럴수록(공격력이 상승할수록) 나는 제대로 된 공을 한 번도 넘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체 서비스는 어떻게 넣는 거냐며 남편을 향해 온갖 핀잔을 주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서비스잖아. 서비스 주는 마음으로 쳐야 해”


아. 그렇구나. 이 당연한 진리를 잊고 있었구나. 서비스는 서비스(service)다. 물론 경기에서는 서비스에도 작전이 필요하지만 결국 서비스는 서비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무너뜨릴 마음으로 주면 실패다. 


서비스를 가장 처음에 배우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공격하는 기술이 아닌 넘겨주는 마음이기 때문이 아닐까. 중심을 잡는 스텝과 힘을 빼고 끝까지 손을 뻗는 연습을 통해 잔잔해지고 단단해지고 나서야 배울 수 있는 기술. 공격성과 이기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이 잔뜩 솟아 있으면 공을 넘기고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되는 기술. 나에게 서비스는 그런 기술이었다. 


내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시작’들을 생각한다. 이기려는 마음으로, 공격하는 마음으로 하는 시작과 주는 마음으로 하는 시작은 다르다. 시작뿐만 아니라 과정도, 결과도 다르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시작하면 내 어깨만 아플 뿐. 공격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내 마음만 뾰족해질 뿐. 상대가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게 시작하면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을 뿐. 그뿐이다. 


시작은 과정이 있기에 가치 있다. 그러니 시작에 온 힘을 쏟지 말자. 시작에 뾰족한 마음을 심지 말자. 주는 마음으로 (마음과 말과 행동을) 던질 때 상대도 나의 주는 마음을 받아 주는 마음으로 다시 공을 넘겨줄 것이다.


이 마음을 깨닫게 된 후부터 라켓과 공이 내 손에 들려 시작을 알릴 때마다 주문을 외운다. 


“워워.(마음을 쓸어내리며, 공격성을 멀리 보내버리며) 주는 마음으로, 넘겨주는 마음으로”



* 랠리: 탁구ㆍ테니스ㆍ배드민턴ㆍ배구 따위에서, 양편의 타구가 계속 이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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