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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Oct 01. 2022

아이러니.


스윙 자세를 잡고 나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공을 정확하게 쳐내는 것이다. 스윙 자세를 배우는 것도 결국엔 자연스러운 자세로 공을 정확하게 쳐내 점수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공을 잘 치기 위해서는 스윙과 타격감, 이 두 가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라켓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는 동시에(정확하게 공을 쳐내기 위해) 팔에는 힘을 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건 글로 읽으면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가 않다. 힘을 붙잡고 있는 것과 힘을 빼는 것. 상반되는 두 가지 원리를 함께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쉽게 그려지지 않는 이 아이러니를 몸에 익히면 자연스러운 스윙과 정확한 타격 모두를 잡을 수 있게 된다.


탁구뿐일까. 나는 때때로 육아의 아이러니 속에서 헤맬 때가 있다. 육아는 단순하지도 이분법적이지도 흑과 백으로 나누어 떨어지지도 않는 고도의 관계학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들이 존재한다.


탁구의 기본은 스텝이고 스텝의 기본은 중심잡기라고 스텝에서 이야기했다. 육아의 기본은 중심잡기라는 것과 함께.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양육자로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고민한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보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가 나와 남편을 통해 좋은 부모상을 만들기보다 좋은 어른에 대해 생각하고 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어른은 위로가 되고 삶의 지침 표가 되고 살아있는 본이 된다. 삶에 좋은 어른 한 명이 있다면 그 삶은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믿음이 있고 이 믿음은 나의 육아관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기도 하다.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좋은 어른이란 단면적이지도, 한 순간의 모습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나와 남편이 아이를 대하고 다른 이들을 대하고 일을 하고 사랑하는 다양한 모습을 통해 아이들이 어른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라켓은 흔들리지 않되 팔에는 힘을 빼야 하는 것처럼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되 방법적인 면에서는 힘을 빼려 한다. 위엄 있는 어른이 아니라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힘을 빼는 노력을 한다. 아이와 키를 맞추어 마주 보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힘을 빼어 무게를 맞추면 함께 시소를 타듯 놀 수 있다. 본이 되는 어른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와 즐겁게 놀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중심을 잡되 힘을 빼는 것. 이 아이러니함이 육아의 무게를 더해주고 덜어주며 균형을 맞춰줄 것이다. 팔에 힘을 뺄 때 자연스러운 스윙이 나오고 라켓이 흔들리지 않게 힘을 붙잡을 때 공을 정확하게 쳐낼 수 있다. 다른 이들의 말과 판단 속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을 때 아이에게 던지는 공은 건강하고 단단할 것이고 육아의 힘을 빼고 아이의 시선에 머물 때 아이와 눈을 맞추며 다정한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난 오늘도 힘을 뺐다 잡았다 왔다 갔다 변신하는 중이다. 흔들리지 않고 아이와 신나게 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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